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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2.09 [36] 허황된 이야기

[36] 허황된 이야기

2019. 2. 9. 00:24 | Posted by 랑세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다. 개중에는 듣다가 지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슬그머니 일어나서 나왔다가 뜸을 들인 다음에 들어가면 지루한 이야기는 지나갔거나 거의 끝물이거나 그렇다. 그러면 좀 덜 지치기도 하고 말하는 사람 기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피할 수가 있다. 그런대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좀 듣다 보니 너무 허황한 이야기 같아서 막 지치려는 찰나에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전개가 되기에 끝까지 듣게 되어 여기에 옮겨 보려고 한다. 그가 이야기한 것을 그냥 기억나는 대로 옮겨보려고 하지만 조금 각색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기억력에 한계라고 이해해 주면 좋겠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의 구 도심권이라기보다는 강남 쪽으로서 요즘에야 중심지라고 할 수도 있는 곳이다. 집 앞에는 주차장이 있어서 남한 어느 지역이든지 갈 수 있도록 차가 준비되어 있다. 호남선과 경부선 영동선 등 고속버스가 즐비하게 기다리고 있어서 언제든지 탈 수가 있다. 그뿐인가. 서울부터 인근 수도권 어디든지 갈 수 있도록 차량 한 대당 수억 원씩 하는 지하철이 3개 노선이나 지나가고 있다. 나는 언제든지 그 넓은 주차장과 승차장을 내 맘대로 이용할 수 있다. 물론 한 밤중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의무실이 있다. 대형 대학병원이 내 의무실이다. 거기는 만약 내가 아프면 뛰어서 갈 정도의 거리에 있으니 긴급 시 걱정이 없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내 수위실이다. 대 검찰청이 뒤쪽에서 내 집을 경호하고 있으며 그 옆에서는 대법원이 내 가정을 지켜주고 있다. 그리고 내 서재로서 대형 도서관이 있다. 그 서재에는 언제나 내가 필요한 책을 필요한 때에 꺼내 볼 수 있다. 그뿐인가. 내 집 뒤쪽에는 큰 정원이 있다. 그 정원은 크기가 미국의 센트럴 파크만큼은 아니지만 내가 한번 끝까지 왕복을 하려면 적어도 한 시간 반 정도 이상이 걸린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우거지고 산새들도 지저귀고 산토끼가 뛰어노는 곳이다. 멀리 산을 찾아서 가지 않아도 운동 삼아 산책 삼아 나는 이 정원을 거닌다."

여기까지 듣다가 막 일어서려는 순간 들리는 말이 나를 다시 자리에 앉게 했다. 그냥 자기 자랑이려니 했더니 꼭 그렇지마는 아닌 듯해서이다.

"이렇게 좋은 곳이니 더 이상 나무랄 데가 없겠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렇게들 생각하나요? 정말 편하고 안전하고 쾌락하니 무엇을 더 바라겠어요? 그런대 그렇지가 않아요. 무언가가 허전합니다. 무엇인가가 없어요. 그게 뭐겠어요. 꾸미지 않은 자연이 없어요. 조용히 흐르는 냇가, 무어라고 말이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랜 세월을 견딘 느티나무 같은 마음을 보듬어 주는 위안거리가 없어요. 떠다니는 구름은 같은 하늘을 노닐지만 구름이 보내주는 정감 어린 그늘이 없어요. 전원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결국엔 쓸쓸한 얼굴 모습이다. 처음엔 자랑인 듯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더 듣다 보니 원래 서울 태생이라 마땅히 갈 고향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아니 서울에서만 산 사람이 전원생활이 그립다고요? 에이 그냥 그리워하시고 마시구려. 아예 시골로 가서 살 생각일랑 마시구려."

했더니 이 사람 화를 벌컥 내면서 왜 그러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시골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왔는데 시골에서의 전원생활을 꿈꾸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간 지 10년 만에 다시 올라왔쑤다. 전원생활이란 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랍니다. 우선 가려고 하는 곳에 연고가 있던가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시골이라고 해서 예전과 달리 텃세라는 것이 있어요. 그걸 헤쳐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 힘이 있어야 해요. 혼자서 텃밭이라도 가꿀 힘이 있어야 해요. 셋째 자신이 있는 취미 생활이 있어야 해요. 남들은 열심히 농사짓고 이런저런 일을 하는데 혼자 빈둥빈둥 놀 수는 없지요. 그러니 취미든 혹은 특기든 뭐라도 있어야 시간도 보내고 혹은 동네 사람들과 어울릴 수도 있지요. 이런 준비가 없이 무작정 전원생활하겠다고 갔다가는 나처럼 서울로 다시 돌아와야 할걸요? 서울로 다시 올려고 해도 쉽지 않았어요. 우선 시골집 처분이 마음대로 안되고 또 막상 처분이 된다 해도 그 돈으로 전에 살던 집만큼은 살 수도 없단 말입니다. 겨우겨우 마련해서 서울로 오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막급입니다."

나는 몇 마디 더할까 하다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 사람은 그냥 하늘만 쳐다보면서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나도 더 이상 그 사람의 꿈을 깨뜨리기 싫어서 그냥 일어고 말았다.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는지 몰라도 그때는 그 사람의 생각이 변함이 없는지 어떨는지는 좀 궁금은 했지만 더 이상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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