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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변함없이 오고 갑니다.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우주도, 사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요.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멈춰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여유가 생기면 금세 게을러지곤 합니다. 쉬고 싶어 하고, 움직이려 하지 않지요.

그에 비하면 우주는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그 거대한 흐름은 늘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올여름은 무척 덥겠다는 예보가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여름이 떠오릅니다.

얼마나 더웠는지, 연일 계속되는 열대야에 참다못해 한밤중에 에어컨을 켜야만 겨우 잠들 수 있던 날들이 있었지요.

‘이게 바로 기상이변이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 환경 파괴의 결과라는 뉴스 보도에도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납니다.

 

자연은 그동안 우리를 얼마나 너그럽게 품어주었을까요.

우리는 그 고마움을 잊은 채, 자연을 마구 이용해 왔습니다.

그에 대한 대가를 이제야 치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무더위도 결국엔 물러났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더니,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가을이 왔다’며 여기저기서 떠들썩했지요.

그런데 정작 가을이라기엔 낮 기온이 여전히 20도를 웃돌아 사람들은 또 혀를 찹니다.

‘이게 진짜 가을 맞아?’

날씨가 급변하는 탓에 걱정도 많았습니다.

하필 아내가 친구들과 나들이를 가기로 한 날, 뉴스에서는 강추위가 온다고 하더군요.

갑자기 추워지면 감기라도 걸릴까 염려되어 독감 예방주사도 나들이 다음 날로 미뤘습니다.

그런데 막상 당일이 되니 기온은 조금 내려갔을 뿐, 걱정했던 급추위는 없었습니다.

“이게 가을 맞아?” 다시 말이 나옵니다.

가을은, 참 묘한 계절입니다.

바람결이 살랑이는 날이면 마음도 함께 흔들리고, 괜히 어딘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가을은 제가 가장 좋아했던 계절입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아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지요.

젊었을 땐 왠지 모를 쓸쓸함에 잠기기도 했지만, 나이 들어서는 그저 살기에 가장 적당한 계절이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좋아합니다.

 

하지만 특정 계절만 좋아하고 나머지는 싫어하는 마음은, 이제 없습니다.

예전엔 “여름은 너무 더워서 싫어”, “겨울은 너무 추워서 싫어” 같은 말을 자주 했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덥든 춥든, 하루 이틀 지나면 익숙해지고, 그 나름의 멋과 기쁨도 생깁니다.

그래서 요즘은 계절을 두고 좋다, 싫다 따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름은 여름이라서 좋고, 겨울은 겨울이라서 좋은 것이지요.

그래서 딱히 “좋아하는 계절”은 없습니다.

 

대신 오늘 날씨가 좋으면 “기온이 참 좋네” 하고, 바람이 불면 “산책하기 좋겠다” 생각합니다.

그날의 기온과 빛, 하늘의 색을 있는 그대로 즐기려 합니다.

 

살다 보니 그렇게 되더군요.

아침에 눈을 뜨면 “아,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었네. 잘 살아야지.” 그런 생각이 먼저 듭니다.

예전에는 “회사 가기 싫다”는 말로 하루를 열었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물론 새벽엔 잠시 꾸물거리기도 하지만, 그건 게으름이지 계절 탓은 아닙니다.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하면 기분은 금세 바뀝니다.

“그래,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겠지.”

 

내가 사랑했던 계절은 분명 가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사랑하는 것은 <어떤 계절이 아니라 ‘오늘’>입니다.

어떤 날씨든, 어떤 계절이든 그 하루를 즐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키워드 100’은 ChatGPT로 받은 글쓰기 글감 리스트입니다.
글쓰기 훈련용이며, 미숙한 글일 수도 있으니 너그러이 봐주시길 바랍니다.>

아침 하늘이 유난히 곱다.

새털 같은 구름이 넓은 띠를 이루고,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인다. 그 한가운데에서 아침 해가 천천히 떠오르며 장엄한 빛을 뿜는다. 야트막한 앞산 능선 위로 퍼지는 그 빛은 마음 깊숙한 곳까지 환하게 비춘다. 이런 날은 아무 데로나 가볍게라도 떠나고 싶지만, 마음만 앞선다. 그저 상쾌한 기분 하나로 멀리 떠나는 기쁨을 상상할 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어려워지는 일이 있다. 바로 걷는 일이다. 하직은 큰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지만, 언제부터인지 낙상에 대한 걱정이 마음 한편을 차지한다. 몸이 느려지고 반응이 둔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노화지만, 그래도 마음만큼은 아직도 훌쩍 떠날 수 있다. 마음의 자유, 그것마저 잃고 싶진 않다.

태종대

몇 해 전, 부산에 사는 딸네 집을 방문했다. 2박 3일의 짧은 여정이었다. 오랜만의 여행이었다.

예전엔 세상이 좁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전연병은 그 모든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단지 물리적 거리만이 아니었다.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자유, 무언가를 향해 다가갈 수 있는 의지마저 묶어두었다. 가고 싶은 곳을 못 가는 그 강제성이 가장 힘들었다.

 

자연스레 여행은 멀어졌다. 신체의 노화가 아니라, 사회적 노화라고 할 만했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세상과 멀어졌고, 마음속 생기도 점점 멀어졌다. 그러나 여러 상황이 나아지면서, 다시 한번 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다.

 

즐거움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수 있으니, 평소에도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인생은 늘 예고 없이 흐른다. 그러니 주어진 것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태도도 필요하다. 젊었을 땐 계획 없는 여행이 더 설렌다고 했지만, 나이가 들면 다르다. 작은 것도 하나하나 미리 챙기고 준비해야 안심이 된다.

 

한때는 혼자 하는 여행이 좋았다. 혼자 걷고, 혼자 머물며, 나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혼자보다는 둘이, 그것도 아내와 함께라면 더 편하다.

 

물론 둘이 함께하다 보면 의견이 달라 충돌이 일어날 때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큰 위안이 된다. 함께 짐을 나누고, 식사화 풍경을 함께 나눈다는 것, 그 평범한 일이 새삼 소중해진다.

 

그러나 이 역시 내 생각일 뿐이다. 아내는 혼자서도 잘 움직이고, 오히려 나와 함께 있을 때는 재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둘만의 여행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아내가 친구들과 함께 여행 다니는 걸 더 좋아한다.

 

나는 요즘 생각한다. 아내하고의 둘 만의 여행은 이제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그리고 그게 어쩌면 더 편할지도 모른다고.

 

누군가 아내의 수다를 받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고, 아내가 마음껏 웃고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나는 비 켜냐 있어도 괜찮다. 조용히 뒤따라가며 풍경을 보고, 조용한 길을 걸으며 나만의 사색에 잠기면 된다.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좋은 일이다.

 

지난 딸네 집 방문에서 나는 그런 걸 배웠다. '함께'라는 말의 의미는 나이와 함께 변해간다는 것.

이제는 '같이 걷자'가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잘 다니자'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여행도 더 이상 현장감만으로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내 안에서, 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풍경과 감정도 여행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나이 듦이 내게 가르쳐준 새로운 여행의 방식이다.

 

오늘 아침, 아내는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다. 새벽부터 부산하게 짐을 챙기고, 활기찬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이 봄, 대지의 생명력처럼 생기 있는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실컷 웃고 이야기 나누고, 마음속 묵은 감정들을 훌훌 털어내고 돌아오기를 바란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한결 가벼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그것이, 지금 내가 여행에서 바라는 전부다.

 


 

<‘키워드 100’은 ChatGPT로 받은 글쓰기 글감 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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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뭔가를 놓친 듯한 느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지만, 이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 자리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다. 깊은 사색에 잠긴 것도, 감명 깊게 읽은 책의 한 구절을 곱씹는 것도 아니다. 그냥 멍하게 있는 것이다.

 

'멍 때리기'라는 말은 이제 익숙한 표현이 되었지만, 한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모두가 '빨리빨리'에 매달려 숨 가쁘게 살아가던 시절,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다간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그런 시대가 지나자 이제는 '멍 때리기 대회'까지 생겼다. 세상은 참 이상하게도, 그렇게 변한다.

내게도 그런 무의식적인 습관이 있다. 멍 때리기. '이제 멍 때리기를 하겠노라'라고 작정하고 앉는 법은 없다. 그냥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문득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게 된다. 방해만 없다면 몇 시간도 그 상태로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거실 옆 주방을 중심으로 방들이 연결된 아파트 구조 탓에, 내 서재 겸 침실도 아내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멍하니 앉아 있으면 아마 아내는 "지금 뭐 하는 거야?" 하며 다가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볼 것이고, 내가 여전히 미동이 없다면 어깨를 흔들어 깨우기까지 할 것이다. 결국 내 멍 때리기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다.

 

무의식적 습관이 그 하나뿐일까? 나에게 또 다른 무의식적인 습관은 운전이다. 운전은 초보자 시절에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에 집중을 필요로 하지만, 어느 정도 운전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운전 중에도 대화를 나누고 음악을 들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들을 조작한다. 이것은 대표적인 무의식적인 습관이다.

 

나는 글쓰기에도 그런 습관이 스며들길 바라고 있다. 어떤 주제를 주더라도 몇 천 자쯤은 자연스럽게 써 내려가는 '습관적 글쓰기'. 나는 그런 글쓰기 장인이 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멀다. 아침에 30분, 자기 전 30분 글쓰기 등이 고작이다. 이걸로 과연 무의식적인 글쓰기가 가능할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런데도 그 길을 가려한다. 손을 자판 위에 올리는 순간, 생각이 정리되고 문장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습관을 만든다. 내가 연전에 담배를 끊은 것도 그런 습관의 변화 중 한다. 흡연처럼 몸에 해로운 습관은 왜 그렇게 쉽게 형성되는지 모르겠다. 반면, 산책이나 아침 일찍 일어나기 같은 좋은 습관은 왜 무의식적으로 스며들지 않는 걸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긴 하품이 끝나기도 전에, 흐트러진 머리를 만지기도 전에 핸드폰에 손이 가는 습관.

소파에 걸터앉아 쓸데없이 유튜브 화면이나 보고 앉아 있는 습관 같은 것들.

이제 이런 사소한 것부터 변화를 가져야겠다.

일어나자마자 핸드폰 보기보다, 창문을 열어젖히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산뜻한 공기 들여 마시기 등과 같은 것으로 바꿔 나가야겠다.

 

그리고 또 나에게 필요한 건, 글쓰기를 그런 무의식적인 습관으로 만드는 일이다. 책상 앞에 앉기만 해도, 노트북을 펼치거나 핸드폰 메모장을 열기만 해도 글이 써지도록, 그것이 나의 나다운 습관이 되었으면 한다.


<‘키워드 100’은 ChatGPT로 받은 글쓰기 글감 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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