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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2010. 3. 8. 00:02 | Posted by 랑세

지리산 둘레 길을 걸었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제주 올레 길을 걸은 지 한 달도 안돼서였다

길 위에 서다

어디선가 읽은 책 제목이었나?

길 위에서 생각하고 걷고 만나고 헤어지고를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 둘레길은 욕심이 앞선

결과적으로 무모한 여행이었다.

10여년 전에 지리산 반야봉에서 천왕봉까지

종주를 2 3일간에 다녀올 때

무척 고생을 한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또 지리산에서 고생을 했다.

길은 길인데 만만한 길이 아니었으니......

 

할 일 없이 빈집을 지키고 있으려니

이건 아니지 한번 박차고 집을 떠나 볼까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출발한 여정이었다.

원래는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고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성격인대다

무턱대고 나다니는 스타일이 아닌대

혼자서 훌쩍떠나는 여행에

무슨 계획이 필요하랴 하는 마음으로의 출발이었다.

 

대충 인터넷에서 둘레길에 대한 정보와 숙박등등에 대한 자료들을 수첩에 메모만하고

고속버스에 올라타서야

아 내가 여행을 출발했구나 하는 실감을 한다.

언제나 여행을 기간이 짧든 길든 또는 국내든 국외든

약간의 기대감과 긴장감이 있어 좋다.

 

인월버스터미널에 도착한 때는 5시경.

우선 지리산길 안내 센터를 찾았다.

인월면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조그마한 약도 한장으로 센터를 찾기에는 역부족.

지리산길 안내 쎈터 입구

지나가는 분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몇 사람 지나서야

한 분이 자세하게 알려주셔서 찾아갔지만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난 6시경에나 도착했다.

당연히 인월에서는 어느 누구에 물어도 알수 있으리라 생각한 내 잘못도 있지만

생각보다는 둘레길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관심은 그리 높지 않은듯

센터조차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좀 실망을 했다.

둘레길을 걷는다는 건 지역 주민들에게 경제적으로

나 물질적으로

도움을 줄만한 관광 상품이 아닌 모양이다.

다만 지나가는 객()일 뿐이니 그런 모양이다.

 

우선 숙소를 정해야지?

미리 연락처를 알아온 민박집이 있어

전화를 하니 예약을 하지 않으면 난방이 되어있지 않아 곤란하다는 말과 함께

요즘은 여관들도 깨끗하니 센터 근처 여관에 투숙하는 것이 나을꺼란다.

예약을 하지않은 내 잘못.

그러나 친철한 답변.

그나마 위안을 삼고 가까운 여관을 정했다.

그렇다. 때는 11월 말경(24일이었음).

제법 날씨가 싸늘했다.

그러니 난방은 필수이고 그러니 꼭 예약을 해야겠지?

여행을 다니다 보면 제일 중요한 문제가 숙소요 음식이다.

지리산으로 둘러 쌓인 시골 산동네.

남원에서 멀지 않아 그런 선입견 때문인지

터미널에 내려서는 순간 추어탕에 넣는 싼초의 향내가 나는 듯하더니

시내를 걷다 보니 계속 그 냄새가 나를 좆아다니는 듯했다.

그리고 10여년전 땅끝 마을에서 수원까지 종군을 할 때 이용해본

여관도 그때나 변함없이 좀 덜 깨끗했고 잠자리 걱정도 여전했다.

그렇게 도착한 둘레길 여정 첫날을 보냈다.

 

이번 둘레길 코스는 인월에서 금계까지 19.3km 구간이다.

하루 코스로는 좀 어려웠다.

얼마전 제주 올레길은 15.1km였는데.

 

인월 출발지

아침을 별로 먹을만한 식당을 찾기도 어렵고

 평소에도 꼭 아침에 밥을 먹어야 하는 습관도 아니고 해서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컵라면으로 때우소

점심으로 삼각 김밥을 몇 조각,우유 1팩 그리고 귤 몇 개등을 준비하고

둘레길 걷기를 출발했다.

아침을 역시 쌀쌀했다.

인월에서 출발하는 몇 팀들이 입구에서 서성이는 것을 지나치면서

목례로 인사를 건넨다.

여행길에서의 만남은 우연이고 가볍다.

처음 몇 키로는 평지였지만 한 3-4키로를 지나 중군 마을을 지나면서는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든다.

산속의 둘레길

하루에 이 코스를 완주하고 끝 지점인 금계에서 마천으로 가서 서울로 고속버스를 타고 돌아온다는 계획에 맞추려면 좀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쉬지 않고 걸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버 페이스(over pace)였다.

중군 마을에서 장항마을 사이는 깊은 산속에다 계곡도 깊었다.

중군마을 담장

그 계곡에 9 20분쯤 도착했을 때 한 아주머니가 산속에서 차양을 걸어놓고

커피나 간단한 음료 즉 막걸리 등을 파는지 한참 장사 준비중이었다.

산속 계곡의 휴게소

산속 휴게소


어디서 오는 길이예요?

인월에서요.

몇시에 출발하셨는데요?

8시쯤요.

아니 날아서 오셨나 벌써 여길 오시다니.

인스턴트 커피를 한잔 마시고 나서 출발하려니까 또 묻는다.

오시는 길에 다른 사람들은 못 보셨어요?

궁금한건 손님들이 오겠느냐하는 것이렸다.

둘레길 중간 중간 길 안내표시

3팀을 내가 앞질러 왔으니까 아마 그사람들 금방 올꺼예요

많이 파시라는 말을 남겨 놓고 출발.

장항 마을을 지나 장항교를 지나 매동마을에 접근할 때

장항마을 입구 소나무

장항교 근처의 공예점

멀리 지리산이 보이는대 천왕봉이 어디쯤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잠깐 쉬면서 두리번 거리는대

웬 젊은 사람이 걸어오길래

동네 사람이려니하고

천왕봉이 어느쪽인가? 했더니

이사람도 한참을 두리번 거리더니 한쪽을 가리킨다.

마을 사람인줄 알았더니 그사람도 역시 둘레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대 왠일 서로 인사(완식이라고 자기 소개를 한다.)를 나누고 보니

나이가 한참 젊어보였는대 50초반이란다.

참 나원 한 30대나 40대 초반으로 보였는대 50이 넘었다니.

우연히 만나 동행한 장00

그래서 동행이 생겼는대

그 사람은 아주 날아다니는 듯해 보였다.

나는 초반에 좀 오버를 해서 점점 걸음 걸이가 늦어지고

자꾸 쉴 수 밖에 없는대..

공연히 그는 나 때문에 늦을 수 밖에.

그런대 놀라운 사실은 쉬면서 띠엄띠엄 들은 얘기였다.

그는 벌써 근 한달 이상을 이곳 저곳을 배낭하나 짊어지고

기약없이 걷고 있다는 것이었다.

둘레길 중간 중간에 휴게소들이 있었지만 평일이라 거의 문들 닫고 있어어요.

그는 중간에 어느 암자가 있는 곳을 지날때는

나보고 앞서 가고 있으면 저 위에 있는 암자를 다녀서 쫒아가겠노라고.

아무리 내가 지쳤기로서니 설마 저 산속에 있는 암자를 다녀서 나를 쫒아오겠다고?

그러나 결론은 1시경쯤 등구재를 넘어서자 마자 길옆에 쉼장소에서

점심으로 준비한 김밥을 먹고있는대 그가 나타 났다.

정말 날아다니는 사나이였다.

등구재가기 전의 산등성이에 짓고 있는 집들

등구재를 바라보고 약 30분 정도는 정말 기다시피하면서 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금계마을에 적어도 3시 30 정도에 도착해야

거기서 마천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고속버스 시간에 댈 수 있는데

너무 지쳐버려 등구재를 넘어서 금계까지는 내리막길(물론 간혹 오르락내리락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인대도 거의 1시간 30분 정도나 걸렸고 그것도 그 사람이 없었으면 아마 그날 서울로 오는 버스는 놓치고 말았지 않았나 싶다.

등구재 넘기전의 주변 층계논 사진보다 실재는 참 아름다운 풍경이었지요.

거의 금계마을로 하산 직전에 만나 산속의 고양이 굶주렸는지 발밑으로 와서 부벼대더니 깁밥을 주니까 열심히 먹고 있다.

 

둘레길 주변의 지리산 풍경들

그는 다시 걷는 여정을 계속할 것이고해서

마천에서 혼자 고속버스에 올라탔다.

우연한 그리고 가벼운 만남인대도 그곳에서의 헤어짐은 역시 쓸쓸했다.

나는 연락처를 그에게 주었지만 그는 자기가 연락하겠노라고만 하고는 연락처를 주지않았고 벌써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은 없어 그 후 그의 걷기는 어떠했을까 궁금할 뿐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오면서

아니 왜 이런 고생을 사서하는가 하는 의문과 함께 여러 상념이 떠오른다.

편한 생활을 위한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지않은가?

인류의 역사는 문명의 발달에 있었으며
문명의 발달은 편한 생활의 발달이라고 할 수 있지않는가?
편한 생활의 염원이 오솔길이 큰 길로 되었을 터이고
그리고 생활 발전에 따라서 신작로(新作路)란 대로가 생겼고
고속도로를 만들어서 대량 교통 수단을 이루어 전국이 1일 생활권이라고 으시대며
경제 발전을 이루웠노라고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룬 업적을 자랑하고
서민들은 박수를 치면서 응대를 해 댔었다.
그런대 이제는 삶의 여유가 있으니까
그 넓은 길을 벗어나서 올레길이니 둘레길이니 찾아나선다.
그렇다 사람이 향을 떠나 살다보면 언젠가는 다시 고향을 찾게되는 것처럼
이제 사람들은 빠르고 편하게 고속도로를 다녔지만
직선으로 뻗은 도로에서 자신을 잃어버렸음을 느끼고
한적하고 조용한 고향 같은 올레길 둘레길을 찾아 나서는가 보다.
잠깐의 만남도 있었고 무모한 여행에 지치고 고단한 몸으로 다시 서울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상쾌하고 깊은 산속 둘레길 처럼 꾸불 꾸불 모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잠깐 눈을 붙인 사이에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아주 오랫 동안 떨어져 있었던 것 처럼 아내와 함께 저녁겸 술한잔을
기울이면서 둘레길을 안주 삼아 얘기 꽃을 피웠다.
참고로 둘레길 팜프렛을 올립니다. 많이들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팜플렛이 커서 두장씩으로 나눴어요. 지리산길1,2번을 지리산길3,4번을 인쇄해서 붙이시면 되요.>


지리산길1


지리산길2







지리산길3

지리산길4




 


Royal Caribbean 크루즈 여행 (3)

2008. 12. 17. 22:34 | Posted by 랑세

크루즈 여행에 대해서 배의 규모나 개략적 일정등을 살펴 보았습니다.
하지만 무릇 여행에 있어서 뭐니뭐니해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먹는 이야기가 우선 되어야 하겠지요?
로얄 캐리비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한 먹을거리에 대해서 입니다.
배의 구조에 대해서 나중에 다시 말씀 드리겠지만 
잠깐 알아보면 1층 부터 15층 까지 엘리베이터가 가동이 되는데
1층과 2층은 배의 출입구 그러니까 승선 하선 시의 입구가 있고
일부는 선실로도 사용됩니다.그리고 일부는 응급용 의료센터가 자리하구요.
3층부터 10층까지는 주로 선실이지요.
그리고 여기서 이야기 하려고 하는 먹거리가 공급되는 그러니까 레스토랑은
3층과 4층은 메인 홀로서 정식 레스토랑이고 11층에는 호텔식  부페식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우리는 3층 레스토랑에 배정이 되어서 저녁 식사는 그곳에서 하지만
11층 부페 식당은 오전 6시 30분 부터 오후 9시까지 언제나 오픈되어있지요.
물론 메인홀에서 저녁식사를 하지않고 11층 부페식당에서 해도 되고 그건 선택의 자유가 있답니다.
그리고 3층 Dinner는 2-3차례 선장(Captain)이 참석하는 만찬이 열리는데 그때는 정장차림이어야만 입장이 가능하도록 되어있고 또 2-3차례는 평상복 차림 그리고 나머지는 그냥 케쥬얼 차림도 상관이없는 그런 격식이 있었답니다.

11층 부페 레스토랑 일부


부페 식당은 4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편한 곳에 자리를 잡으면 되는데
아시안식 코너도 있어서 간혹 그곳이서는 간혹 밥을 가져오는 정도이고
가급적이면 유럽식 혹은 아메리칸 스타일을 이용해보기로 했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식사때마다 김치와 밥은 꼭 있어야 한다는 고집들 때문에
이번에도 좀 고생은 했지만 그런 관념에서 벗어나 정말 양식을 태어나서 지금까지 먹은거 보다 더 많이 먹는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11층 부페 레스토랑 일부


식당안에서는 저녁 9시까지 내가 먹고 싶을때는 언제나 가서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음식을 가져다 선실내에서 먹어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야외 갑판에 가져다가 옹기 종기 모여서 먹기도 했는데 그럴때 마다 언제,어디를 가져다 먹어도 상관 없을뿐 아니라 먹은 빈 그롯들을 그냥 옆에다 놓아 두기만 하면 어느새 종업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치워버리는 서비스가 무척 고맙기도 했고 사실 좀 미안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커피와 아이스크림은 언제나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그야말로 음식에 관한한은 천국(?)이었습니다.

3층 메인홀 레스토랑 테이블 셋팅장면


3층 메인홀 레스토랑은 정식 코스로서 웨이터가 주문을 받아서 가져다 주는데
어려운 점은 메뉴에 있는 음식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어서 주문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마침 크루즈 여행을 몇번씩 경험하고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고 계신 분들이 계셔서 그분들의 조언을 듣고 나름대로의 지식을 총동원해서 시키곤 했는데 부페식당은 음식을 직접 보면서 골라 먹을 수 있어서 그런대로 괜찮은대 이곳에선 그런점이 좀 불편했습니다.
아뭇튼 서울에서 아이들과 블랙엥거스라는 양식당을 가서 스테이크를 맛본 경험(?)을 살려 블랙엥거스 스테이크는 몇번 자신있게 주문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켑틴(정 가운대 하얀 제복을 입은 사람)이 참석한 만찬인대
만찬이 끝난 후 같이 사진한장 찍으려 했더니 미리 사전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에 포기하고 말았지만 매우 카리스마가 있게 생겼지만 인상은 그리 나쁘지않았습니다.

3층 메인홀 레스토랑 캡틴이 참석해서 정식 만찬 장면

Royal Caribbean 크루즈 여행 (2)

2008. 12. 16. 21:39 | Posted by 랑세
자 이제 크루즈 항해가 시작 되었습니다.
우선 배 안에서의 생활은 매일 발행되는 cruise compass에 의해서
그날 그날의 일정 계획이 알려집니다.
그냥 간단히 말해서 일종의 신문 아니면 소식지라고 할까?
아뭇튼 매일 저녁이면 다음날의 일정계획이나 행사,또는 공연 스케쥴등이 안내되어 있습니다.
아래 보이는 건 제일 첫날 배달된 것인데 그중 제일 마지막 부분에
크루즈 12박 13일의 일정과 각 날짜의 공연 스케쥴과 배가 기항할
각 섬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대충 항해일정을 보면 At sea로 표시되는 건 계속 항해를 한다는 것으로
처음 3일을 항해하니까 11월 9일 10일 11일 그리고 12일 아침까지이고
마침내 12일데 오랫만에 육지를 보게되는 Puerto Rico의  San Juan이라는 섬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어서 13일에는 ST. Thomas,U.S.V.I.(
America's Virgin Islands),14일에는 St.Maarten,
15일에는 Roseau,Dominca,16일에는Bridgetown Barbados,17일에는육지로서는 마지막으로St.John Antigua,에 기항하고 18일 19일 20일은 또 계속 항해해서 21일 뉴욕에 다시 돌아오는 그런 여정입니다.


매일 저녁이면 배달되는 다음날의 일정 계획 공연 스케쥴등을알려주는 신문



크루즈 일정표크루즈 일정표(클릭을하면 크게 볼수 있음)


Royal Caribbean 크루즈 여행 (1)

2008. 12. 14. 20:35 | Posted by 랑세

마침 어느 항구엔가 같은 배 두척이 나란히 정박중임


Royal Caribbean 크루즈 여행을 다녀와서 이 글을 쓰려는 순간
그 어마어마하고 으리으리한 Royal Caribbean 배의 규모가 생각나고
너무 우아하고 아름다운 배 내부의 시설과 각종 요리들,그리고 지나온
남미의 각 섬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광경에 잠시 글쓰기 조차 머뭇거려진다.

우선 Royal Caribbean 배의 규모를 잠깐 살펴보면
대충 높이가 61m, 폭이 39m, 길이가 311m, 톤수가 140,000톤 정도되는 규모이다.
탑승인원은 승객이 3200명, 승무원및 종업원이 1800명 정도로서
약 5,000명 정도의 인원이 탑승했다.

Royal Caribbean의 정박 야경


마침 항구에 다른 배도 들어와 같니 정박한 모습(왼쪽이 Royal Caribbean)


여행 기간은 2008년 11월 9일 부터 11월 21일까지 12박 13일로
출항은 뉴욕의 뉴왁 항구에서 출발을 했다.
출항수속은 여느 공항의 수속과 비슷하지만
특성상 출입국 관리직원과 로얄 케리비안측의 직원들이 동시에 출국 수속을 담당하는데
약 5,000명 정도의 인원의 출국 수속이니 출국장은 마치 큰 장터같이 시끌했지만
질서 유지팀 수속 행정팀 등 직원들이 통솔하는대로 조용히 질서를 지켜서
수속을 밟으니까 그 많은 인원들이 약 2시간여만에 수속이 끝났다.
자! 이제 출항이다.
뉴욕의 맨하튼이 멀리 보이고 자유의 여신상도 보이고
먼 미국에 와서 크루즈 여행을 떠나는 마음은 벅차오르기만 했다.
우선 수속을 마치고 배에 승선하면서 부터 큰 배의 규모에 놀라고
그리고 직원들의 친절하고 매너있는 서비스에 감탄하게 된다.

출항 직전의 맨하튼 전경 앞쪽에 자유의 여신상이 보인다.


배에 오르자 아나운스 맨트가 나온다.
모든 승객은 3층에 있는 메인 홀로 모이라는 내용이다.
비상 훈련겸 교육을 위한 것이라지만 비상시와 같이 엘리베이터도 정지되어있어
계단을 이용해서 3층으로 집합애야 한다. 참고로 객실은 1층에서 부터 11층까지로 되어있다.
그곳에 약 3천명 정도의 승객이 조용히 그러나 재빨리 모이기 시작했다.
모이는대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건 아니지만
교육 시간도 아주 짧게 20여분만에 끝났다.
내용은 이미 구명 조끼등이 객실내부 어디에 위치하고 있나(집합시 구명조끼를 착용했으므로 객실 어디에 있는지는 이미 알고) 그리고 비상시에 행동요령등 설명이 영어로 이루어 지니까 대충 눈치로 때려 잡는 수밖에......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비상 훈련 교육중임


그리고 배의 선실에 들어가니 환영 인사와 함께
와인 1병이 탁자위에 놓여있어서 초장부터 분위기 쨩이 되었다.

탁자위에 놓인 와인 메모지에는 환영인사와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점심을 위해서 레스토랑에 가보니
각종 요리가 진열되어 있었고 승선 축하 세러모니로 요리로
멋있는 축하상을 진열해 놓았다.
이건 나중에 또 이야기 하겠지만 주방요리사들의 승객에 대한 인사로
절대로 그들은 승객을 위하고 승객의 만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가
승선 첫날 첫 시간부터 알 수 있었다.


자 이제 출발이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한잔 cheers!!!

출발 자축 건배


할로윈데이(Halloween Day)

2008. 11. 3. 02:04 | Posted by 랑세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는 참 알수 없는 나라이다.
우주로켓을 쏘아 올려 달에 인간의 발자욱을 남겨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그리고 실망을 안겨주면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중무장을 하는 나라인대 별 스럽게 할로윈데이라는 어찌보면 미신적이고 촌스럽기도한 풍습으로 나라 전체가 축제를 즐기기도 하니 말이다.
축제의 의미는 귀신 복장 또는 호박등을 들고 어린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과자나 사탕을 얻어가는 풍습이다.이때 과자와 사탕을 줌으로써 집안의 나쁜 귀신 액운등을 다 가져가라하는 뜻에서 사탕이나 과자를 준다고 한다.
그런대 이 축제를 위해서 몇일전부터 집 앞에 호박등이나 귀신 복장을 한 인형등을 꾸며서 분위기를 한껏 뛰워놓기도 한다.
동네를 다니다 보면 어떤 대는 할로윈데이가 여름이 끝나는 10월 31일이니까 그때는 추수가 끝난때이니까 수수때를 잎사귀가 마른채로 역어서 가로등이나 집앞 나무에 묶고 인형을 꾸며놓기도하고 또는 호박(pumpkin)을 안을 비워서 사람의 얼굴 형태로 눈,귀,등을 표현해 놓기도한다.
마당 이곳 저곳에 호박을 쭉 늘어놓기도하고 어떤 집은 귀신 형태의 인형이 모자라서 해골을 묘사한 아예 전신이 노출된 뼈마디가 흐느적거리는 인형을 세워놓기도한다.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 끝내는 맨하튼의 거리 축제를 보지 못해 아쉽기는 하지만 동네를 걸어다니면서 집 마당을 꾸며 놓은 장식들을 구경하면서 다니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랜드캐니언

2008. 11. 2. 04:59 | Posted by 랑세

                                                     그랜드 케니언에서

그랜드 케니언에 도착했을때는 무척 바람이 드세었다.
마치 어디 감히 나를 내려다 보느냐하는 고함이라도 지르는 듯 우리의 접근을 거부하는 몸짓으로 강한 바람으로 우리에게 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이곳이 어디인가.더구나 내가 다시 이곳을 어찌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심정으로 마구 전망대를 향해 접근해 갔다.바람은 내 몸을 휘감고 저 깊은 계곡으로 데리고 갈 기세였으나 수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려는 몸을 난간에 겨우 기댄채 사진을 찍었다.
아! 자연이 이처럼 위대한 것인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랜드 케니언에서
그랜드 케니언을 보기 위해서 모하비 사막을 가로 질러서 왔다.
모하비 사막은 코치를 타고하는 여행으로서 가도 가도 끝이 없을것 같은 사막이었다.
지평선의 끝은 보이지 않고 어쩌다 지나가는 마일트레인(기차에 연결된 화차 수가 약 100량으로서 약 1.6km 길이가 된다고 해서 붙여진 기차의 별칭)이 눈에 들어올뿐 보이는 건 서부 영화에서 보는 자그마한 풀포기 보다는 좀 크고 나무라고 하기에는 좀 작은 덤풀 덩어리들이 드문 드문 자라고 있는 황량한 들판을 보면서도 경외감을 느꼈었다.
그 끝에서 만난 그랜드 케니언!!!!!!
어떤 사람은 계곡을 내려다 본 순간 그 곳에 무릎을 꿇고 감사와 환희의 기도를 올렸다는데........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탄성은 누가 뭐라 할 사이도 없이 터져나왔다.
아! 아! 아!

                                              그랜드 케니언 휴게소 입구


그랜드 케니언의 설명 (출처 다음 백과사전)
복잡하게 깎인 이 넓은 협곡 바깥쪽에 당당한 봉우리와 평지에 우뚝 솟은 산, 깎아지른 듯한 골짜기가 수없이 늘어서 있다. 폭은 0.2~29km이고 길이는 약 443km인데, 애리조나 주 북쪽 경계선 근처에 있는 파리아 강 어귀에서 시작하여 네바다 주 경계선 근처에 있는 그랜드위시 절벽까지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이 주류에서 갈라져 나온 수많은 협곡들과 주변의 고원지대를 통틀어 그랜드캐니언이라고 한다.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에서 가장 깊고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파월 호(湖)에서 미드 호까지 강을 따라 뻗어 있는 약 90㎞의 협곡이다. 협곡의 전체적인 빛깔은 붉은빛이지만, 각각의 지층 또는 지층군은 독특한 색조(황갈색, 회색, 미묘한 초록색, 분홍색, 깊숙한 곳은 갈색, 푸른 빛이 도는 회색, 보라색)를 띠고 있다. 해발 2,500m에 이르는 노스림은 사우스림보다 365m나 더 높다.
그랜드캐니언을 처음으로 발견한 유럽인은 1540년 이 지역을 조사한 코로나도 탐험대이며, 그후 스페인 성직자인 프란시스코 가르세스와 실베스트레 벨레스 데 에스칼란테가 1776년에 다시 이곳을 발견했다. 1800년대 초반에는 사냥꾼들이 이곳을 조사했고, 서부를 탐험하여 지도를 만든 몇 개의 정부 탐험대가 이 협곡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1870년대에는 존 웨슬리 파웰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이곳을 탐험한 뒤, 이 지역의 지형과 지질·생물·원주민 등에 대하여 다양하고 광범위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1919년 이곳을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당시 면적은 4,930.76㎢)으로 지정했다. 그후 1975년 예전의 그랜드캐니언 천연기념물과 마블캐니언 천연기념물 및 글렌캐니언 국립휴양지의 일부를 비롯한 주변지역을 추가하여, 국립공원의 면적은 훨씬 넓어졌다. 협곡의 노스림(북쪽 가장자리)과 사우스림(남쪽 가장자리)은 포장도로와 협곡을 가로지르는 오솔길로 이어져 있다. 포장도로를 자동차로 달리거나 횡단도로를 걸으면 협곡에서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부분을 모두 볼 수 있다. 노새 관광과 뗏목이나 동력선을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는 여행은 협곡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맛보고 체험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이다. 수많은 푸에블로 인디언과 암굴거주인의 유적은 거기에 남아 있는 유물과 더불어 선사시대에 이 땅에 살았던 푸에블로족(族)의 생활상을 보여 준다. 가까운 보호구역에는 인디언 5개 부족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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