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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 [애송시 100편 - 제 75편] 성북동 비둘기 정끝별·시인
 원문링크 :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07/2008040700360.html
정끝별·시인
입력 : 2008.04.04 23:29 / 수정 : 2008.04.05 01:13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1968년>

▲ 일러스트 권신아
김광섭(1905~1977) 시인의 호는 이산(怡山), '기쁜 산'이다. 그는 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창씨개명을 반대한 애국교육자, 광복 후 중앙문화협회를 창립한 우익 문단의 건설자,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지낸 정치인, 언론사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으로 현대사 100년을 정말 '산'처럼 살았다. 실제로도 그는 늘 산을 향해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뎄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속으로 간다"(〈산〉), "목마른 아스팔트를 옆으로 빠져서/ 나는 계절이 풀리는 산으로 간다"(〈산바람처럼〉).

'남포 깐다' '남포 튼다'는 말이 있었다. 남포란 다이너마이트를 이르는 말이다. 이 개발 저 개발로 너도나도 산업화의 역군이었던 60~70년대 내내 대한민국 전역에 이 산 저 산을 깨는 남포 소리 울려 퍼졌었다. 산을 깎아 돌을 채취하고 도로를 만들고 빌딩을 올리곤 했다. 뻥 뻥 남포를 까면 산에 살던 뭇 짐승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고 강에 살던 뭇 물고기들은 기절을 하기도 했다. 뻥 뻥 남포 까는 소리에 밤 보따리를 싸들고 서울로,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이 산동네, 달동네로 몰리던 시절이었다. 이 시의 창작 배경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돌 깨는 소리가 채석장에서 울리면 놀라서 날아오르는 새들, 그러나 저것들이 우리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 줄 것인가. 돌 깨는 산에서는 다이너마이트가 터지고 집들은 모두 시멘트로 지어서 마음 놓고 내릴 장소도 없는 저것들이란 데 생각이 머물렀어요." 고혈압으로 쓰러져 투병하던 중 성북동 집 마당에 앉아 하늘을 돌아나가는 비둘기떼를 보고 착상했다고 한다.

성북동 산과 산동네가 개발되면서 산비둘기는 둥지를 빼앗겼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인간들이 산을 깨는 것과 비둘기들 가슴에 금이 가는 것을 대비시키고 있다. 이제 산비둘기들은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그렇게 쫓긴 산비둘기들이 거리로, 광장으로, 고가 밑으로, 옥상으로, 창턱으로 흰 똥을 찍찍 내갈기며 뒤뚱뒤뚱 걸어다니고 있다. 산동네, 달동네 사람들도 그렇게 내쫓기곤 했다. 재개발과 산업화와 도시화와 문명화의 이면이었다. 유심초가 부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노래로 더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저녁에〉)라는 시를 읊조려 보는 아침이다.

 원문출처 : [애송시 100편 - 제 74편] 절벽 이 상 문태준·시인
 원문링크 :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04/2008040400313.html
문태준·시인
입력 : 2008.04.03 23:03 / 수정 : 2008.04.04 01:32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거기묘혈을판다.


묘혈도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


나는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않는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잊어버리고재차거기묘혈을판다.


묘혈은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로나는꽃을깜빡잊어버리고들어간다.


나는정말눕는다. 아아. 꽃이또향기롭다. 보이지않는꽃이―보이지도않는꽃이.

▲ 일러스트=잠산

아마도 시인은 꽃이 핀 것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꽃잎이 둥글게 열리는 것과 꽃의 둘레를 달무리처럼 둥글게 감싸는 향기를 맡고 있었을 것이다. 시인은 그 둥근 공간에 들어가 자신의 몸을 눕힌다. 죽은 사람의 몸이 놓이게 되는 무덤의 구덩이 부분이 묘혈인데, 그처럼 오목하게 파인 곳에 자신의 몸을 눕힌다. 이 시는 시인의 다른 시에 비해 비교적 쉽게 읽히는 편이지만 문제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밝게 만개한 꽃과 비산하는 꽃 향기의 반대편에 차디찬 주검과 서늘한 묘혈을 배치하고 있다. 열린 공중과 유폐된 땅 속, 두 공간은 서로 차단되어 멀리 떨어져 있다. 시인은 이 이격된 거리를 가파르고 낙차가 큰 절벽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이 시에도 병이 든 육체를 바라보는 시인의 황폐한 자의식이 드러나고 있다.


이상(1910~1937·본명 김해경)은 실험적인 글쓰기를 보여준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기이한 발상과 국어 문법을 파기한 그의 작품들은 당시에도 지금에도 파격 그 자체이다. 절망적인 근대의 시공간을 살아가는 자아의 분열과 의식과잉을 그는 익히지 않고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 해서 그의 작품들은 수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독 불가능한 상태로 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 〈오감도〉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독자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쳐 연재 15회 만에 전격적으로 연재가 중단되었다. (독자들은 이상의 시에 대해 "개수작", "미친 놈의 잠꼬대" 등의 화포와도 같은 말들을 동원해 비난을 퍼부었다).


시인 이상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온도차가 뚜렷했다. 희대의 문제아였고, 모던 보이였고, 모더니스트였고, 천재작가였으며, "이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건"(고은)이었고, "모국어의 훼손에나 기여한 시인"(유종호)이었으며, 그는 "잉크로 글을 쓰지 않고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썼다"(김기림).


그러나 이상은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는 미술에 솜씨가 있어 하융(河戎)이라는 이름으로 박태원의 신문연재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삽화를 직접 그렸다. 그의 시는 숫자와 도형의 사용, 공간 분할 등을 보여주는 바, 이것은 그가 한때 조선총독부 건축과 기수로 일한 전력과 무관하지 않았다.


[애송시 100편 - 제 73편] 반성 704

2009. 1. 2. 19:13 | Posted by 랑세
원문출처 : [애송시 100편 - 제 73편] 반성 704 정끝별·시인
 원문링크 :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03/2008040300323.html
정끝별·시인
입력 : 2008.04.03 01:00

밍키가 아프다

네 마리 새끼가 하도 젖을 파먹어서 그런지

눈엔 눈물이 흐르고

까만 코가 푸석푸석 하얗게 말라붙어 있다

닭집에 가서 닭 내장을 얻어다

끓여도 주어보고

생선가게 아줌마한테 생선 대가리를 얻어다 끓여 줘 봐도

며칠째 잘 안 먹는다

부엌 바닥을 기어다니며

여기저기 똥을 싸 놓은 강아지들을 보면

낑낑낑 밍키를 보며 칭얼대는

네 마리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

나는 꼭 밍키의 남편 같다.  <1987년> - 김 영 승

▲ 일러스트 권신아

김영승(49)은 반성의 시인이다. 그는 술이나 잠에서 반쯤 깬 반성(半醒)의 시인이고 기존의 서정시로부터 반 옥타브쯤 들떠 읊조리는 반성(半聲)의 시인이다. 가난과 무능으로 일그러진 욕망의 고백을 일삼는 반성(反性)의 시인이고, 구도자적 치열함으로 당대와 스스로를 부정하는 형이상학적 반성(半聖)의 시인이다. 그는 이 모든 반성의 삶을 돌이켜 살피며 반성(反省)한다. 반성하는 기록자, 반성하는 반항인, 반성하는 백수(白手), 반성하는 주정꾼, 반성하는 폐인, 반성하는 시인이 바로 그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반성시는 취언(醉言)이고 포르노이고 일기이고 철학이고 종교이기도 하다.

'밍키'는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강아지 이름이다. "놀랍고 분(憤)해 죽겠다는 듯 밍키가 짖는다/ '저젓……영키야!'/ 하며 어머니가 소리치고 나서 웃는다// 영승이를 부르시려 한 건지/ 밍키를 부르시려 한 건지// 하긴 나를 밍승이라고 부르면 또 어떠랴"(〈반성 764〉), "우리 식구를 우연히 밖에서 만나면/ 서럽다// 어머니를 보면, 형을 보면/ 밍키를 보면/ 서럽다"(〈반성 673〉)에서처럼, 그는 스스로를 반성할 때 슬쩍 자신을 밍키에게 얹어놓곤 한다.

이 시에서도 병들고 구차한 밍키의 모습에 자신의 삶을 비춰보며, 스스로가 밍키의 남편 같다며 너스레를 떤다. 밍키도 아닌, 밍키의 남편 같다는 데서 날카롭고 쓸쓸한 유머는 더해진다. 밍키에 대한 사랑은, 설움과 누추함 속에 살아가는 스스로에 대한 동병상련일 것이다. 실은 아내도 없이 상처투성이로 뒹구는 백수의 외로움과 고독과 소외를 얘기하려는 것이리라. 그가 동병상련하는 것은 구차한 강아지, 밍키만이 아니다. 발로 눌러 끄는 선풍기(〈반성 743〉)나 똥통에 빠진 슬리퍼 한 짝(〈반성 827〉)이나 만신창이가 된 풍뎅이(〈반성 608〉)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자신있게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그러기에 슬픈 사람일 뿐이지만/ 그렇지만 나는 갖다 버려도/ 주워갈 사람 없는 폐인입니다."(〈아름다운 폐인〉)라는 그의 자조와 위악과 오만은, 이렇게 '바닥'을 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리라.

그는 자신의 시를 "훔쳐보기만을 하는 변태성욕자처럼/ 자기자신과 세계에 대한 불연속적 보고서의 작성자로 전락한/ 사실무근한// 인간과 인간사와/ 그리고 '나'라고 하는 개체의 일들을/ 왜곡되게 기록한 것//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서정시"(〈반성·서(序)〉)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렇게 반성의 끝을 향해 치달았던 그의 시는 개인과 젊음이 차압당한 폭력적이었던 80년대에 대한 저항이자, 그 회복을 위한 자존과 실존의 고해성사일 것이다. 우리 시사에서 드물게도 외설시비를 불러일으켰던 《반성》은 '아름다운 폐인'의 경지에서 '시인됨' 혹은 '시됨'의 가능성을 새롭게 모색한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원문출처 : [애송시 100편 - 제 72편] 마음의 수수밭 문태준·시인
 원문링크 :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02/2008040200348.html
문태준·시인
입력 : 2008.04.02 00:57 / 수정 : 2008.04.02 01:40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잎 몇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 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천불산(千佛山)이

몸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1994 년>  - 천양희

▲ 일러스트 잠삼

마음을 네모진 돌과 같이 하라는 말씀이 있다. 비가 떨어져도 깨지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는 네모진 돌. 그러나 우리네 마음이 어디 그러한가. 마음은 사나운 코끼리에 비유되고 번갯불에 비유되고 원숭이에 비유되니 그 분주함과 변화무쌍을 제어하기 어렵다. 시시각각 생기면 사라지니 붙잡으려야 붙잡을 수 없다. 마음에는 '차츰'과 '조용히'와 '차근차근'이 살지 않는다. 마음은 근심의 주머니여서 고통에 결박되므로 큰 병(病)의 뒤끝처럼 완쾌가 드물다.

이 시는 쉬지 않는 마음을 수수밭의 일렁임에 빗대었다. 시인의 고백에 따르면 이 시는 강원도 어느 마을에서 만난 수수밭이 시 창작의 모티프가 되었다고 한다. 시인은 "죽음을 각오하고 떠난 여행길에서 살아 돌아온 마음으로 쓴 시"라고 고백했다. 바람결에 서럽게 서걱대는 수수밭에 앉아 통곡을 했다고도 한다. 그런 일이 있은 지 8년 만에 이 절창의 시는 태어났다고 했다. 시인은 암처럼 깊어진 삶의 그림자를 끌고 보리밭과 수수밭과 계곡 초입에 있었을 절을 지나 산을 올랐을 것이다. 속 빈 고사목을 두들겨 쪼는 까막딱따구리도 도중에 만나면서. 절벽에 홀로 섰을 때 산 아래 저쪽에서 아직도 쪼그리고 앉아 수수밭처럼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멀찍이서 보았을 것이다. 비로소 고통마저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고통과 안온과 증오와 자애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화엄의 생명세계를 보았을 것이다. 저속하고 용렬한 세상과의 불화가 사라졌을 것이다.

천양희(66) 시인은 1965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올해로 시력 43년이 되는 그녀는 "고통에 함몰된 나를 시가 구원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럴까. 김승희 시인은 그녀의 시를 "고독 위에 새긴 존재의 찬란한 금속세공과도 같다"고 평했다. 아직도 원고지에 시를 쓰고, 시를 쓰기 전에는 꼭 손부터 깨끗이 씻는다는 시인.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벌새가 사는 법〉) 그녀는 혹독하게 그녀의 '몸을 쳐서' 시를 쓴다. 고통의 몸을 쳐서 쓴 시들이기에 그녀의 시편들은 존재들의 뒤편을 읽어낸다. 문득 생(生)의 뒤란으로 돌아가 만나게 되는 쓸쓸함과 욕됨과 근심의 얼굴을. 시 〈뒤편〉에서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라고 썼듯이.

시집 《너무 많은 입》에 실린 '시인의 말'은 그녀의 골똘한 시작(詩作)을 짐작하게 한다. "시 생각만 했다 시 생각만 하다가 세상에 시달릴 힘이 생겼다 생긴 힘이 있어 시 생각만 했다 그토록 믿어왔던 시 오늘은 그만 내 일생이 되었다, 살아봐야겠다."


 원문출처 : [애송시 100편 - 제 71편] 진달래꽃 김소월 정끝별·시인
 원문링크 :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01/2008040100349.html
정끝별·시인
입력 : 2008.03.31 23:16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일러스트=권신아

소월(1902~1934)을 생각하면 노랫가락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그의 시가 노래처럼 가락을 타고, 실제로 그가 노랫가락을 즐겨 듣고 그 노랫가락을 시로 썼고, 무엇보다 그의 시가 많은 노래로 불렸기 때문일 것이다. 동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엄마야 누나야〉)에서 시작해 정미조의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개여울〉), 홍민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부모〉), 장은숙의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못잊어〉), 건아들의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활주로의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마야의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진달래꽃〉)에 이르기까지. 가히 '국민시인'이라 칭할 만하다.


그런 소월을 생각하면 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가 〈진달래꽃〉이다. 소월은 외가인 평북 구성에서 태어나 그 가까운 정주에서 자랐으며 그 가까운 곽산에서 31세의 나이에 아편 과다복용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정주 가까운 영변에는 약산이 있고, 약산은 진달래꽃으로 유명하다. 그가 보았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약산의 진달래꽃이었을 것이다. 그는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꽃'으로 보통명사화시키고 있다.


'가실 때에는'이라는 미래가정형에 주목해볼 때, 이 시는 사랑의 절정에서 이별을 염려하는 시로 읽힌다. 사랑이 깊을 때 사랑의 끝인 이별을 생각해보는 건 인지상정의 일. 백이면 백, 헤어질 때 '말없이 고이' 보내주겠다고 한다. 죽어도 눈물만은 보이지 않겠다고 한다. 아무튼 그땐 그렇다! 그 사랑을 아름답게 기억해달라는 소망이야말로 이별의 로망인 바, 떠나는 길에 아름다운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뿌리려는 이유일 것이다. 특히 '아름'은 두 팔로 안았던 사랑의 충만함을 환기시켜 주는 감각적 시어다.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떠나는 건 아무래도 여자에게 더 어울린다. '말없이 보내드리우리다'나 '죽어도 아니 눈물을 보이겠다'는 결기야말로 남자다운 이별의 태도일 것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실 그때, 눈물을 참기란 죽는 일만큼이나 힘겨운 일이지만 그래도 당신을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겠고, 당신이 '사뿐히 즈려 밟고' 떠날 수 있도록 눈물만은 보이지 않겠다는 것이 이 시의 전모다. 얼마나 애틋한 사랑시인가. 이 사랑시는 영혼을 다해 죽음 너머를 향해 부르는 절절한 이별시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초혼·招魂〉)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리라. 이렇게 노래하는 시인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원문출처 : [애송시 100편 - 제 70편] 방심(放心) 손택수 문태준·시인
 원문링크 :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31/2008033100347.html
문태준·시인
입력 : 2008.03.31 00:18 / 수정 : 2008.03.31 00:19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
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



스윽, 제비 한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지나가버렸다



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

그야말로 무방비로

앞뒤로 뻥

뚫려버린 순간,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
사립문을 빠져 나가는 게 보였다 내 몸의
숨구멍이란 숨구멍을 모두 확 열어젖히고

'마음을 놓다'라는 말, 참 오랜만이다. 마음을 풀어 놓아 버린 일 얼마나 오래되었나. 마음 졸이며 염려하고 살아왔을 뿐. 시인은 대청마루에 큰 대(大)자로 누워 있었던 모양이다. 최대한 마음과 몸을 느슨하게 하고서. 바다처럼 편편하고 넓게 퍼져서. 그런데, 스윽, 칼날이 지나가듯 제비가 공중을 한 층 횡으로 서늘하게 자르면서 지나간 모양이다. 손가락을 퉁기는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에 벌어진 기습처럼.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보다 더 민첩한 한 줄기 바람으로.

집과 나의 중심부를 뚫고 지나갔으니 급소(명자리)를 맞은 듯 어이없고 어리둥절해서 말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체험은 얼마나 시원한 것인가. 체증(滯症)이 가신 듯했을 것이다. 마음을 꼭 붙들어 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터. 마음을 사방으로 허술하게 경계 없이 풀어놓는 것으로서 우리는 마음의 열림을 얻기도 한다. 그것이 무방비의 미덕이다. 좀 게으르게 혹은 별 준비 없이 멍청하게 있다가 한번쯤 당해보기도 해보라. 그런 당함에는 오히려 소득이 있다. 마음의 앞뒤 문을 다 열어놓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을 볼 수 있었겠는가. 마음을 조급하게 각박하게 쓰느니 차라리 이처럼 마음에 장애를 아예 만들지 않음이 오히려 '심심(深心)'이요, '정(定)'에 가깝다.

손택수(38) 시인은 긍정심이 아주 많은 시인이다. 다른 존재들의 '빛나는 통증'을 그의 시는 받아 안는다. 그의 시는 그가 어렸을 때 그곳서 자랐다는 전남 담양 강쟁리 마을을 배경으로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곳 마을 사람들의 천문(天文)적인 상상력은 그의 시에 들어와 크게 빛을 발하면서 그만의 새로운 서정을 만들어낸다. "별이 달을 뽀짝 따라가는 걸 보면은 내일 눈이 올랑갑다"('가새각시 이야기')라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와 매달 스무 여드렛날은 "달과 토성이 서로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 흙들이 마구 부풀어오르는 날"('달과 토성의 파종법')이자 "땅심이 제일 좋은 날"이라며 밭에 씨를 뿌리러 가던 할머니의 상통천문(上通天文)이 자주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콧구멍에는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혼쥐로 살고 있다는 믿음, 임신한 몸으로 시큼하고 골코롬한 홍어를 먹으면 태어날 아이의 살갗이 홍어처럼 붉어진다는 믿음 등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한 마을에서 자연 발효된 이런 금기사항은 우리 시에서 어느덧 희귀해진 것이어서 각별하고 값지다.

그는 스무 살 무렵 안마시술소에서 구두닦이를 할 때 안마시술소 맹인들에게 시를 읽어주면서 시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시영 시인은 그를 "송곳니로 삶을 꽉 물고 놓지 않는, '고향의 기억'을 잊지 않는 오랜만의 생동하는 민중서사적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나는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역린(逆鱗)'을 생각한다. "물고기 비늘 중엔 거꾸로 박힌 비늘이 하나씩은 꼭 있다고"('거꾸로 박힌 비늘 하나') 하는데, "유영의 반대쪽을 향하여 날을 세우는 비늘"인 역린을 생각한다. 그의 시에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생(生)을 펄떡이게 하는, '뽈끈 들어올려주는' 힘이 있다. 시에 있어서 가장 든든한 원군(援軍)은 역시 '삶 그 자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