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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출처 : [애송시 100편-제39편] 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21/2008022100290.html
정끝별·시인
입력 : 2008.02.21 02:11 / 수정 : 2008.02.21 09:40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이 잠거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도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께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1947년> 

▲ 일러스트=권신아
"거리의 뒷골목에서 만나거든/먹었느냐고 묻지 말라/굶었느냐곤 더욱 묻지 말라"(시 '나를 만나거든')던 시인 이용악(1914~1971)! 그는 한반도의 최북단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났다. '두만강 너 우리의 강'을 건너 할아버지는 소금을 밀수입했고 친척들은 그 강을 건너 아라사(러시아) 연해주 등지로 이민을 갔다. 그 두만강을 건너 밀무역 행상 중 아버지는 객사하였으며, 홀로 된 어머니는 국숫집을 하며 어린 자식들을 키웠다. 시인 또한 서울에서 동경에서 품팔이 노동을 하며 고학했다. 이야기성과 체험의 구체성이 두드러진 그의 시들을 읽는 일은 일제강점기의 불행한 개인사, 가족사, 그리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읽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북간도 어느 술막에서 함경도 사내와 전라도 가시내가 만났다. 사내는 언 발로 눈보라를 뚫고 두만강을 건너왔으며 날이 밝으면 다시 흔적도 없이 떠나야 한다. 가시내는 석 달 전에 북으로 달리는 '불술기(기차)' 속에서 치마를 뒤집어쓴 채 이틀을 울며 두만강을 건너 이곳으로 팔려왔다. 그런 두 남녀가 국경 너머에서 만나 겨울밤 내 지나온 내력을 이야기하며 술잔을 주고받고 있다.

그 밤 내 사내가 '가시내야' '가시내야'라고 부를 때, 그것도 함경도 사내가 '전라도 가시내야'라고 부를 때, 그 전라도 가시내는 한없이 차고 한없이 차진 느낌이다. 고향을 떠나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고 울었던 가시내, 지금은 남실남실 술을 치는 가시내. 때로 싸늘한 웃음을 보조개를 소리 없이 새기는 가시내, 까무스레한 얼굴에 눈이 바다처럼 푸른 가시내, 간간이 전라도 사투리가 섞이는 가시내…. 이 함경도 사내처럼 나는, 그 전라도 가시내를 만난 것만 같다. 전라도 개펄의 바지락 조개 같고 세발낙지 같고 때로 꿈꿈한 홍어 같기도 했으리라.

그 밤 내내 함경도 사내가 피워 올리는 북쪽 눈포래 냄새와, 전라도 가시내가 피워 올리는 남쪽 바다 냄새에 북간도 술막이 흥성했겠다. 그 술막의 술독 바닥났겠다. 눈에 선한, '흉참한' 시대를 살았던 그 전라도 가시내. "너의 노래가 어부의 자장가처럼 애조롭다/너는 어느 흉작촌(凶作村)이 보낸 어린 희생자냐"(제비 같은 소녀야-강 건너 주막에서)!

 원문출처 : [애송시 100편-제38편] 긍정적인 밥 - 함민복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20/2008022000023.html
문태준·시인
입력 : 2008.02.20 00:16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1996년> 

▲ 러스트=잠산
"아무리 하찮게 산// 사람의 생(生)과 견주어 보아도// 시(詩)는 삶의 사족(蛇足)에 불과"('詩')하지만 시인은 시를 써서 세상의 돈을 쥔다. 끙끙대고 밤을 새우며 쓴 노력에 비하면 원고료는 박하고, 몇 년 만에 펴내고 받는 인세로 꾸리는 생활은 기궁하다.

그러나 이 가난한 시인은 원고료와 인세를 교환하면 쌀이 두 말, 국밥이 한 그릇,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이나 되니 든 공에 비해 너무 많은 게 아닌가라고 묻는다. 쌀이 두 말이 되기까지의 노동, 한 그릇의 국밥이 되기까지의 노동, 굵은 소금 한 됫박이 되기까지의 노동에 비하면 내 노동의 대가는 얼마나 고맙고 큰 것인가 라고 말한다. 땡볕 속에서 몸으로 얻어낸 그것들에 비할진대. 이 세상 정직한 사람들의 숭고한 노동에 비할진대.

함민복(46) 시인의 초기 시는 거대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공포를 노래했다. "이 시대에는 왜 사연은 없고/ 납부통지서만 날아오는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이 아닌가"('자본주의의 사연')라고 노래했고, 서울을 문명을 주사하는 '백신의 도시'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1996년 그는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인, 마당에 고욤나무가 서 있는 강화도 동막리 폐가 한 채에 홀로 살림을 부렸다. 동네 형님 고기잡이배를 따라다니며 망둥이, 숭어, 농어를 잡고, 이제는 뻘낙지를 잡을 줄도 아는 어민후계자 시인이 되었다. 뻘에 말뚝을 박으려면 힘으로 내려 박는 것이 아니라 "뻘이 말뚝을 품어 제 몸으로 빨아들일 때까지/ 좌우로 또는 앞뒤로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뻘에 말뚝 박는 법')는 것도 배웠고, 그물 매는 것을 배우러 나갔다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경진 아빠 배 좀 신나게 몰아보지/ 먼지도 안 나는 길인데 뭐!"('승리호의 봄')라며 농담을 할 줄도 안다.

강화의 서해 갯바람과 갈매기와 뻘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의 시는 단단한 문명에 맞서는 '부드러움의 시학'으로 나아가면서 우리 시단에서는 한동안 드물었던 '섬시(詩)' 명편들을 낳고 있다. 강화도의 '물때달력'을 오늘도 들여다보고 있을 시인아.

 원문출처 : [애송시 100편-제37편]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 고은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19/2008021900217.html
정끝별·시인
입력 : 2008.02.19 01:55 / 수정 : 2008.02.20 11:40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으로 벋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 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文義)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주(註) : 문의(文義)-충북 청원군의 한 마을.


<1974년> 

▲ 일러스트 권신아
중학생 때 길에서 주운 한하운 시집을 읽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시인.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시인. 출가와 환속, 숱한 기행, 폐결핵, 자살시도, 군법회의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기도 한 반독재 민주화운동 등 열정적인 삶을 살아온 시인. 시, 소설, 평론, 평전, 번역, 수필 등 150여 권에 이르는 신화적 글쓰기로 유명한 시인. '젊은 시인이여 술을 마셔라'라고 일갈하는 말술의 시인. 격정적인 시낭송이 일품인 시인. 낭만적인 허무의식에서, 역사와 민중에 대한 첨예한 현실인식으로, 그리고 선적(禪的) 초월의식으로 시적 변모를 거듭해온 시인. 올해로 등단 반세기를 맞이하는 시인. 여러 의미로 고은(75) 시인은 '큰' 시인임에 분명하다.

이 시는 신동문 시인의 모친상을 조문하러 문의에 갔다가 쓴 시라고 알려져 있다. '문(文)'과 '의(義)'의 마을, 문사(文士) 혹은 지사(志士)들이 꿈꾸었을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지명이다(실제의 문의마을은 80년 대청댐 담수로 수몰되었으며 그 일부가 문의문화재단지에 복원되었다). 문의마을에 눈은 만났다가 갈라지기를 거듭하는 삶과 죽음, 산과 들, 마을과 길의 경계를 덮으며 내린다. 경계를 덮으며 내리는 눈은 온 세상을 낮게 그리고 가깝게 만들고, 적막하게 그리고 서로를 껴안아주고 받아줄 듯 내린다. 시인에게 그 눈은 죽음처럼 내리는 것이다. 우리 삶 속의 죽음처럼.

그의 다른 시 "싸락눈이 내려서/ 돌아다보면 여기저기 저승"('작은 노래'), "쌓이는 눈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눈길')라는 시에서도 눈은 '대지(大地)의 고백(告白)'이나 '위대한 적막(寂寞)'처럼 내린다. 한 평자는 그러한 눈을 '아름다운 허무'라고도 했다. 그러나 눈은 금세 내리고 금세 녹아버리듯, 우리가 삶에서 죽음의 의미를 깨닫기란 높고 먼 일이다. 상여(喪輿)의 길처럼, 마을에서 산에 이르는 길은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겨울 문의에 가서 시인이 본 것은 그 길이 '가까스로 만난'다는 것이고, 너무 가깝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덮으며, 가깝게 낮게 내리는 눈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으리라.

 원문출처 : [애송시 100편-제36편] 우리 오빠와 화로 - 임화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18/2008021800132.html
문태준·시인
입력 : 2008.02.18 01:00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 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南)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 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리하여 지금은 화(火)젓가락만이 불쌍한 영남(永男)이하구 저하구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남매와 같이 외롭게 벽에 가 나란히 걸렸어요



오빠……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왜―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들어가신 그날 밤에


연거푸 말은 궐련[卷煙]을 세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


저는요 잘 알았어요 오빠


언제나 철 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 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천정을 향하여 기어올라가던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박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하여 제가 영남(永男)이의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웠을 동안에


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마루를 밟는 거칠은 구둣소리와 함께―가 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우리 위대한 오빠는 불쌍한 저의 남매의 근심을 담배 연기에 싸 두고 가지 않으셨어요


오빠―그래서 저도 영남(永男)이도


오빠와 또 가장 위대한 용감한 오빠 친구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집을 때


저는 제사기(製絲機)를 떠나서 백 장에 일 전짜리 봉통(封筒)에 손톱을 부러뜨리고


영남(永男)이도 담배 냄새 구렁을 내쫓겨 봉통(封筒) 꽁무니를 뭅니다


지금―만국지도 같은 누더기 밑에서 코를 고을고 있습니다



오빠―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 한 계집애이고


영남(永男)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예요


그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 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화로는 깨어져도 화(火)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永男)이가 있고


그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뜻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직도 더웁습니다



그리고 오빠……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영남(永男)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청년 오빠의 무수한 위대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형님을 잃은 수없는 계집아이와 동생


저희들의 귀한 동무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건강히 오늘 날마다를 싸움에서 보냅니다



영남(永男)이는 여태 잡니다 밤이 늦었어요



―누이동생


<1929년>

▲ 일러스트 잠산
임화(1908~1953)는 일제강점기에 사회주의 문학운동을 표방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의 핵심 멤버로 카프의 서기장을 지낸 시인이자 평론가였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임화는 모던 보이였다. 영화 '유랑'과 '혼가'에서 주연을 맞기도 해 '조선의 발렌티노'로 불리었다. 그는 계급주의 문학의 선봉에 서서 카프를 이끌었지만, 막상 1935년에는 카프 해산계를 직접 내야 했다. 해방 직후에는 서울 종로 한청빌딩에 조선문학건설본부라는 간판을 내걸어 좌익 계열 문인들을 규합했다. 그 후 박헌영을 따라 월북했으나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이 시는 사건적이고 소설적인 데서 시의 소재를 찾았고, 소박하고 '된 그대로의 말'을 사용했고, 노동자들의 낭독에 편한 리듬을 씀으로써 카프문학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단편 서사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제사(製絲) 공장 여직공이었다가 이제는 백 장의 봉투를 붙이면 일전을 버는 일을 하는 화자가 오빠에게 보내는 애틋한 편지글 형식이다.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라는 표현으로 봐서 오빠는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화로에 '오빠' 혹은 '혁명가의 정신'을 빗대어서, 역경―거북무늬 화로가 깨어지는―이 지금 닥쳐왔지만 굴하지 않고 이겨내겠다는 뜻을 밝혀 놓았다.

임화는 올해로 김기림, 김유정, 최재서, 백철과 함께 탄생 100돌을 맞았다. 임화는 1936년에 '오오 적이여, 너는 나의 용기다'라는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썼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 20'에서 '임화'라는 시를 통해 '아직껏 한국문학사에는 버려둔 무덤이 있다/ 마른 쑥대머리 무덤/ 그 무덤 벙어리 풀려 열리는 날/ 그 무덤 속 해골/ 뚜벅 걸어나오는 날/ 임화는 오리라// 아름다운 얼굴 다시 오리라 부신 햇살 뿜어 오리라'라고 써 왕양(汪洋)한 기상의 소유자였던 그를 추모했다.

 원문출처 : [애송시 100편-제35편] 그릇1 - 오세영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15/2008021500069.html
정끝별·시인
입력 : 2008.02.15 00:45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1992년>

▲ 일러스트 권신아
시력 44년을 맞는 오세영(65) 시인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자 국문학 박사이자 교수로 시작과 평론과 시학을 병행해 왔다. 지금까지 17권의 시집으로 출간된 그의 시들은 물질과 정신, 문명과 자연, 철학적 지성과 감성적 정서가 상응하는 '잘 빚어진' 서정시를 견지하고 있다. 이를 '전통의 토대 위에 형성된 철학화된 서정시' 혹은 '모순의 시학'이라 했던가.

일찍이 노자는 말했다. 도는 빈 그릇과 같다고. 얼마든지 퍼내서 사용할 수 있고, 언제나 넘치는 일이 없고, 깊고 멀어서 천지 만물의 근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릇은 하나인데 그 하나로 인해 안과 밖이 나뉘고, 그릇에게는 밖인데 그 밖이 안을 품고 있고, 비어 있음으로 다른 것을 채운다. 그릇에 대한 시인의 통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시인은 '절제와 균형'을 긴장된 힘으로 유지하고 있던 그릇의 '깨짐'에 주목한다.

깨진다는 것은 긴장하고 날카로워진다는 것이다. 모와 날을 세운다는 것이다. 겨냥하고 노린다는 것이다. 때로 상처를 내고 피를 부르기도 한다. 그릇은 비어 있음으로 충만한 둥금의 세계지만, 언제나 깨질 위기에 처해 있고 깨졌을 때 이면을 드러낸다.

그러한 파괴는 이전을 벗음으로써 이후를 여는 파탈(擺脫)이 된다. 스스로뿐 아니라 타자의 파탈을 이끌기도 한다. 스스로뿐 아니라 타자를 상처냄으로써 상처 깊숙한 곳에서 혼(魂)의 성숙을 이끌기도 한다.

그러므로 깨진 그릇이야말로 끝이면서 시작이다. 시작의 '눈뜸'은 바로 끝의 '깨짐'과 한 몸을 이룬다. 때문에 시인에게 '깨진다는 것'은 갇히기를 거부하는 움직임이다. 공간을 뛰쳐나온 존재의 환희다. 빈 공간이며 허공이고 무(無)다. "깨지는 그릇./ 자리에서 밀린 그릇은/ 차라리 깨진다./ 깨짐으로써 본분을 지키는/ 살아 있는 흙,/ 살아 있다는 것은/ 스스로 깨진다는 것이다"('살아 있는 흙 -그릇14').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모순의 그릇', 깨져서 새롭게 완성되는 '깨진 그릇'이야말로 오세영 시인의 가장 개성적인 개인 상징이라 할 만하다.

원문출처 : [애송시 100편-제34편] 어떤 적막 - 정현종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14/2008021400334.html
문태준·시인
입력 : 2008.02.14 02:20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들꽃을 따서 너는

팔찌를 만들었다.

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

둥근 안팎은 적막했다.



손목에 차기도 하고

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

네가 없는 동안 나는

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



그리로 우주가 수렴되고

쓸쓸함은 가이없이 퍼져나간다.

그 공기 속에 나도 즉시

적막으로 一家를 이룬다―

그걸 만든 손과 더불어.


<2000년> 

▲ 일러스트 장산
들꽃을 따서 엮은 둥근 꽃팔찌. 그 반짝이는 꽃팔찌를 말없이 만들었을 당신의 낮과 당신의 손. 가는 손목에 차고 다니다 탁자에 벗어놓은 당신의 꽃팔찌. 들꽃 같은 시간의 꽃팔찌. 쓸쓸함과 적막이라는 삶의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꽃팔찌.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쓸쓸함과 적막함. 당신은 없고 이제 나의 팔목에 차 본 둥근 꽃팔찌. 오, 들꽃처럼, 들꽃으로 엮은 꽃팔찌처럼 온기와 생기(生氣)의 일가를 이루려 했던 당신의 마음.

이 시처럼 정현종(69) 시인은 작품을 통해 삶의 생기를 발견해내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는 전후의 한국 시단에 팽배해 있던 허무주의를 극복하려는 경향을 내내 보여주었다. 그는 사물들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었고, 만물과의 우주적인 교감을 노래했다. 그는 탄력 있는 생각의 샘을 소유한 시인이다. 그의 언어는 은유적이고 율동적인데, "가벼움, 경묘(輕妙)함이 나의 시론의 하나"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가볍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뜻. 자유로운 정신은 고통을 뼈저리게 느낀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축복일 터. 해서 정현종 시인은 "가슴이 고만 푸르게 푸르게 두근거리는" 시인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단 두 줄로 짧게 쓴 시 '섬'은 많은 독자들이 여전히 사랑하는 시이며, 그가 번역해 국내에 소개한 네루다와 로르카, 옥타비오 파스 등 외국 시인들의 시집과 시론서들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의 영혼은 어둠 속에서도 샛별처럼 빛나야 하는 것. 우리의 영혼은 바닥에 떨어져도 다시 튀어오르는 공처럼 생동해야 하는 것. 시인은 한 대담에서 "이 세상이 내 앞에 처음으로 있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라. 그렇게 살라"고 당부한다. 오늘은 그의 시 '꽃시간'을 함께 읽어보자. 당신에게도 오늘이 꽃시간이기를, 안팎이 둥근 꽃팔찌의 시간이기를. "시간의 물결을 보아라./ 아침이다./ 내일 아침이다./ 오늘밤에/ 내일 아침을 마중 나가는/ 나의 물결은/ 푸르기도 하여, 오/ 그 파동으로/ 모든 날빛을 물들이니/ 마음이여/ 동트는 그곳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