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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이제까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쓴 경우를 꼽아본다면

얼마나 될까.

무수히 많지 않았을까.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심초사하는 것은

이승을 뜰 때까지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여러 생애 걸쳐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지 말고 이 세상이라는 것은

단지 감각들이 빚어낸 것에 불과함을 알아차려야 한다.

*

이 세상은 오온이 빚어낸 것이다.

그것은 당신과 아무 상관도 없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세상이라고 부르는 세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름이 사람이고 세상일 뿐이다.

오온(五蘊);인간을 구성하는 정신과 물질의 다섯 요소.

곧 몸(), 느낌(), 인식(), 의지(), 의식()

*

우리 절에서는 가끔

코카투 앵무새가 떼로 몰려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들은 아주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어떤 사람들은

코카투가 떠드는 소리가 싫다고 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 소리를 싫어하든 말든

그것들은 여전히 시끄럽게 떠들어댈 것이다.

그러니 어째서 놓아버리지 않는가.

*

명상하면서 나는 나에게 묻곤 한다.

"어째서 소음은 나를 어지럽게 만들까?"

밖에서 나는 새소리든 누군가가 기침하든,

넓은 홀 문이 꽝 하고 닫히든

어째서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까.

어째서 나는 눈꺼플을 닫아버리듯

보이지 않는 마개를 찾아내

두 귀를 닫아버릴 수 없는 것일까.

*

소리를 잘 살펴서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이해하고 나자

내가 소리를 들은 단 하나의 이유는

내 마음이 그리로 향해 귀담아들었기

때문임이 분명해졌다.

소리의 세계에 대한

나의 적극적인 관여가 있었던 것이다.

소리가 나를 어지럽게 만든 것은

그 때문이었다.

*

아잔 차는

소리가 너희를 어지럽게 만드는 게 아니라

너희가 소리를 어지럽게 만든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아주 심오한 말씀이었다.

나는 그 말씀 덕에 소리의 본성과 소리가

내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아잔 차( Ajahn Chah, 1918~1992); 20세기 태국 상좌부 불료 스님 중 가장 위대한 명상 스승으로 꼽히며, 아잔 브람과 아잔 수메도 같은 서구 출신 제자를 여럿 지도하기도 했다.

*

누군가 당신을 돼지나 천치라고 부를 때

그 소리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런 소리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 소리를 귀담아듣는다.

우리는 소리의 세계에 관여하고

그것에 집착한다.

소리가 그 본성에 따라 나오는 것에

불과함을 깨달을 때

우리는 염오의 자세를 갖게 된다.

소리에는 아주 듣기 좋은 소리도 있고

미친 소리도 있고 새 소리도 있다.

어뗜 새들은 감미로운 소리를 내고

까마귀 같은 새들은 흉측한 소리를 낸다.

까마귀가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은

까마귀 탓이 아니다.

제 속성에 따라 그런 소리를 낼 뿐이다.

*

젤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재가 수행다들은 까마귀 같고

어떤 재가 수행자들은 나이팅게일 같다.

어떤 승려들은 말을 예쁘게 하고,

어떤 승려들은 흉측하게 한다.

그런 소리들은

각자의 속성에서 나올 뿐이다.

그런 소리들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

우리가 염오를 통해

그런 소리들에 관여하지 않을 때

그것들은 사라져 버린다.

고통의 원인이 소멸될 때

고통은 사라져 버린다.

감각의 세계는

다른 것으로 바꾸려는 마음이 전혀 없으면

저절로 사라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염오하는 마음과 함께

그것에 관여하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에게 퇴짜를 놓을 것이고

우리도 그것을 무시하게 된다.

염오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