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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고요한 중심인 마음으로
희향하는 것으로도 볼 수가 있다.
이따금 당신은 고향 세계, 친구들의 세계,
심지어 불교의 세계도
당신을 당신의 중심으로부터 끌어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그렇게 잡아당기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바깥세상들은 평생토록
당신을 그런 식으로 끌어당겨 왔다.
그러한 끌어당김은
당신에게 어떤 결과를 안겨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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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들이 절을 떠나는 것
대개 이성(異性) 때문이다.
그들이 절을 떠나 과연 행복해질까.
오래전 <펀치>라는 잡지에 수록된
특집기사의 제목은
'결혼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이었다.
그런데 그 기사의 한가운데 두 페이지는
"DOON'T(하지마)"라는 네 글자를 빼고는
텅 비어 있었다.
그 기사를 쓴 이들은
결혼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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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라.
당신은 특별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지혜롭기 때문에
결혼의 고통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
당신 더 나은 사람이라서
다른 모든 사람이 직면하는 어려움과 문제를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에고의 오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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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젊었을 때는 많은 환상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런 환상들을
논리적인 귀결점까지 끝끝내 추적해
그것들이 나를 더 이상 사로잡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지?'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지?'
전체적인 그림이 떠오를 때까지
계속 추적해 들어갔다.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인생의 석양을 향해 나아가는
환상들을 떠올리면서
"그 다음에는?"이라고 계속 캐묻자
모든 즐거운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 다음에 오는 것들은 공허하기만 했다.
그 다음에 오는 것들은
다른 모든 사람이 겪는 것과
똑같을 터이므로
거기에는 어떤 화사한 색깔도, 광채도,
기쁨도, 행복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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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부분들이 이울어 사라지고 나면
출발점으로 돌아간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삶에 관한 어떤 지혜도 체득하지 못한다.
그저 즐겁고 행복한 몇 순간을 맛보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이기며
허덕허덕 살아가려고 애쓸 뿐이다.
그러다 눈 깜박할 사이에 늙어
결국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진다.
그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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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오의 길을 따르면
당신은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당신은 이미 많은 고통을 겪었을 테니
고통을 탐구하기에 충분한 자료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당신에게 어려움이 닥쳐올 때는
그 고통을 깊이 들여다보고
염오의 자세를 갖추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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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거에 든 동안 간간이
지루한 기분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다리가 저리고 아플 경우,
명상하거나 걷거나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고
그저 지루하기만 한데
달리 뾰족하게 할 것이 없이
그냥 멍하니 앉아 있을 경우에는
지루함을 잘 살펴보고 조사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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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잘 살펴볼 때는
그 모든 순간이
자신의 성숙과 훈련을 위해 활용할
좋은 명상의 시간이 되어준다.
마음훈련은
사물과 현상을 통제하려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갖은 어려움과 실망스러운 일을
당신에게 진리를 가르쳐주기 위해 오는
진리의 사자(使者)들로 여겨라.
아잔 차는 그런 것들을
끄루바 아잔, 곧 '큰 스승'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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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스승은 태국의 어느 큰 절에
살고 있지 않다.
그런 이는 허구적인 큰 스승이다.
참된 스승은
당신이 아침에 눈을 뜨긴 떴는데
너무 피곤해 도무지 잠자리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을 때
당신의 오두막 안에 계실 것이다.
그런 큰 스승은
당신이 오랜 기간 명상을 하는데도
아무 진전이 없을 때 그곳에 계실 것이다.
참된 큰 스승은
당신이 명상할 날이 얼마나 남았나
헤아리고 있을 때 그곳에 계실 것이다.
누군가가 당신의 밥그릇에
형편없는 음식을 담아줄 때
당신이 막 깊은 명상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하필이면 까마귀가 요란하게 울어댈 때
혹은 당신에게 큰 실망과 환멸감을
안겨주는 일들이 일어날 때가
바로 스승이다.
그런 것들은 주시하고 귀담아듣고
꿰뚫어보고 이해해야 할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