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즐거운 세상 사는 이야기, 세상 사 모두가 즐겁지 아니한가?
랑세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읽은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8

  1. 2009.01.10 윤재근 저 莊子
  2. 2009.01.10 박완서님의 친절한 복희씨

윤재근 저 莊子

2009. 1. 10. 22:56 | Posted by 랑세

 

<출처: 윤재근 저 莊子>

 

<소요유>의 어록

 

물이 괸 곳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만한 힘이 없다. 한 잔의 물을 마루의 패인 곳에 엎지르면 풀잎은 떠서 배가 되지만 거기에 잔을 놓으면 마루바닥에 닿는다. 물은 얕은데 배가 크기 때문이다

(夫水之積也不厚  則負大舟也無力 覆杯水於拗堂之上 則芥爲之舟 置杯焉則膠 水淺而舟大也)

 

 

 

사람은 앉을 자리를 보고 발을 뻗을 줄 알아야 하고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을 줄 알아야 한다.

사람만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물이 다 그렇게 하면 어긋남이 없어질 것이 분명하다.

물은 얕은데 배가 크다면 그것은 어긋난 것이다.

얕은 물에는 풀잎이 배 구실을 하지만 큰 배가 뜨자면 깊은 물이 있어야 한다.

이처럼 큰 것과 작은 것은 서로 제 나름의 관계를 간직한다.

이러한 관계를 아는 일이 무엇보다 귀중하다. 

 

앎에도 크나큰 앎이 있고 작은 앎이 있다.

하나를 알고 둘을 모르면 그 역시 하나를 아는 탓으로 일이 저질러지고 만다.

큰 앎이란 부족함이 없는 것이며 크고 작은 것을 아는 앎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큰 것을 큰 것으로 알려 하지 않고 작은 것을 작은 것으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얕은 물에다 배를 띄워 놓고 뜨지 않는다고 한탄을 한다.

얕은 물에서 배가 어떻게 뜰 수 있을 것인가는 생각하지 않고 한사코 배를 띄워야 한다고 욕심을 고집한다.

 

이러한 짓은 모두 어리석은 인간의 탈이다.

인간은 아주 작은 존재에 불과한데도 하늘보다 더 크고 땅보다 더 크다고 우겨댄댜.

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인다.

사람이 어러석으니 그 삶도 어리석고 그 삶이 어리석으니 삶마다 답답하고 조여들 뿐이다.

 

옹색한  자리에서 발을 뻗으려고 하면 할 수록 발만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 온 몸이 아프고 괴롭게 되어 버린다.

이러한 수고는 분명 얕은 물에다 배를 띄우려는 욕심에 불과하다.

이 얼마나 허망한 욕심의 덩어리인가.


박완서님의 친절한 복희씨

2009. 1. 10. 22:52 | Posted by 랑세

박완서의 소설집을 읽었다.

요즘 가평 도서관을 그냥 놀려두기 아까워 슬슬 이용해보고 있다.

그런대 역시 시골 읍의 도서관답게 참 관리가 엉망진창이다.

좀 깔끔을 떨어도 좋으련만 사서라고 앉아있는 사람은 수시로 바뀐다.

어떤때는 좀 늙수그레한 사람이 또는 알바인듯한 학생이....

그런대 어제는 좀 젊고 그런대로 좀 생긴 여자가 앉아 있길래 좀 나을까 싶어

적어간 책 몇권을 찾을 수 없어 문의 했더니..........

참 그러고도 공무원이라고 세금을 축내고 있으니......

뭐 내가 도서관 품평(?)을 하려고 하는게 아니니 이쯤에서 접어두고.....

이제 70이 넘은 박완서씨가 낸 소설집을 읽었다.

나야 한국문단에 대해서는 별로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잘 보는 편은 아닌대

아내가 그 책은 읽고 싶다해서 빌려왔다.

아내 말 그대로 이야기 꾼이잖아 그사람 그냥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읽는 거지 뭐.....

맞다 그냥 이야기 꾼다운 역시 변함없는 그런 소설집이다.

뭐 내가 평론을 할 입장은 아니니까 소설집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중에 "마흔아홉살"이라는 단편이있다.

내용은 막내를 대학에 갓 입학시킨 갱년기 또래 여인들의 모임으로 가칭 효부회에 앞장서 희생적으로 봉사하고 있는 회장이 자리를 비킨 사이 동료 회원들로 부터 그녀가 겉으로는 노인 남자의 하초를 씻겨주는 등 어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헌신을 보이면서도 시아버지의 팬츠는 집게로 들어 올려 세탁기에 냅다 뿌리치는 이중인격의 위선자라고 가혹한 뒷욕을 받는 이야기를 내용으로 너무 자세히 써버리면 소설을 그대로 옮겨 적는꼴이 되니 이쯤으로 줄이고....

여기서 그런 내용보다 내가 쇼크를 받은 부분은

그 회장이란 주인공의 시부모들이 경제적으로나 사정적으로나 별 문제없이 잘 살아오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시어머니 쪽에서 별거를 주장해서 재산을 정확히 반쪽으로 나눠 갖고 따로 살자고 하는 부분이었다.

그러고는 재산을 반씩 나눠서는 여자는 딸애집으로 남자는 아들네로 그러니까 그 주인공인 여자네로 각기 들어가서 살기로한 내용이다.

물론 처음에 자식들은 당황했지만 시어머니의 완강한 고집때문에 어쩔수 없이 그런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렇게 사는데 별로 어려움은 없었다. 왜냐하면 각기 재산을 가지고 있으니까 전혀 경제적으로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고 딸애 입장에서는 오히려 엄마가 옴으로해서 애들 뒷치닥거리에 도움을 받아 좋아진 점이 많았고 며느리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조금은 불편한 점이 없지않아 있겠지만 외형적으로는 전혀 영향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대도 이런 상황을 초래하게된 원인이 시어머니라는 생각에 시아버지의 팬티가 시어머니의 모습으로 의인화하면서 못볼꺼를 보는양 집게로 집어다 세탁기에 냅다 뿌리치는 행위를 하게 된것이다.

모임에서 회원들은 그 행위의 원인과 이유를 잘 알지 못하면서 엽기다 위선이다 하면서 몰아세웠지만 알고 보면 전혀 그런 방향과는 무관한게 읽다보면 밝혀 진다.

나는 그런 이야기꾼의 이야기에 매료되기보다는 문제는 시어머니의 그런 제안이 심각한 문제를 내게 안겨준다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 나는 아들네도 가야할 터인데 나는 그럴 수 없을꺼 같은 마음이다.

아내는 딸네로 남편은 아들네로.....난 자신이 없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읽고 생각해보건데 과연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거지?하는 화두만 생기고 말았다.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