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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찍으려면 1000번을 찍어라'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을 읽다가 눈에 확 띄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1000번씩이나  찍으라고? 정호승 시인이 성철 스님이 살아계실 때 인터뷰하기 위해서 해인사로 찾아뵈었을 때 어렵사리 얻은 인터뷰 기회에 스님께 세상 사람들을 위해 한 말씀을 해주시길 청했답니다.  말씀을 듣고 있는 동안 동행한 사진 기자가 열심히 사진을 찍어 대니까 스님께서 뭔 사진을 그리 많이 찍느냐고 하시더랍니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많이 찍어야 한다고 말씀드리니까 '그럼 1000번을 찍어라' 하시더란다.

시인은 그 당시 그 말씀의 뜻을 헤아릴 수 없었지만 인생의 화두로 삼으면서 잊지 않고 생각하다가 어느 날 문득 그 말씀이 '무슨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해 노력해라'라는 뜻임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무슨 일을 하던지 1000번을 노력하면 안 되는 일 없겠지요? 어떤 일을 하다가 실패를 하더라도 1000번을 시도한다면 그 일에 성공하지 않을까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남긴 발명왕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까지도 그렇게 수많은 실패를 겪은 후 성공했다고 하지요?

만약 어떤 누구를 미워하고 있다면 마음속으로 그냥 나는 저 사람을 좋아해'하고 1000번을 읊조린다면 그래도 미워할 수 있을까요? 만약 어떤 글을 1000번을 쓰고 고치면 좀 더 다듬어지지 않을까요?

정호승 시인도 그 글에 쓰기를 '시를 쓰려면 1000번을 써라' 그리고 또 '누굴 사랑하려면 1000번을 사랑해라'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되었든 하루 한 번씩 한다고 하면 1000번이 되기 위해서는 1000일을 해야 하고 그러면 약 3년 정도가 걸릴 터인데 그렇게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있을까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늘도 감동해서 일이 성사되도록 돕지 않을까요?

1000번을 노력해 보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어떤 일이든 시작해 봐야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 마음속에 깊숙이 감춰진 것을 꺼내도 좋고 아니면 가장 가까이 자리한 일들, 담배를 끊는 다든가 그동안 연락 없던 친구를 만나본다거나 하는 등, 그리고 '당신에게'라는 이 글을 1000信 이상이 되도록 써보도록 한다든가.

아무튼 무엇인가 당신과 살아가는 동안을 글로서 써보고 싶은 마음을 이어가도록 노력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14信] 싫은 사람들

2019. 1. 14. 20:54 | Posted by 랑세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지요.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순환 속에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요.

그런 만남 속에서 친구가 생기고 선배도 생기고 후배도 생기지요. 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만남 중에 애인도 있고요. 그렇게 평생을 지내다 보면 참 많은 사람들이 곁을 스쳐지나 가고 또 만나고 하게 됩니다.

옛말에 '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이 있지요. 하지만 좋은 인연도 있고 좋지 않은 인연도 있는 것 같아요. ' 나는 저 사람 참 싫어!' 하는 경우가 왕왕 있거든요. 참 싫은 사람 그런 사람들 중에  위선자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선자들이란 국어사전을 보면 ' 겉으로만 착한 체하는 사람'이라고 나와있더군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주변에 이런 사람들 있지요. 자기는 깨끗하고 정직한 체하지만 부패와 부정축재를 일삼는 사람들, 신사인척하면서 온갖 스캔들을 뿌리는 사람, 겉으로는 정직한 납세자인 척하면서 알바 생들을 괴롭히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사람들, 약한 사람들을 돕겠다고 봉사하는 사람인 양 소리가 요란한 사람이 알고 보니 오히려 약자를 이용하고 학대했던 사람들 등 참으로 우리 주변에서 없어져야 할 그런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몰염치한 사람들과 더불어 가장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평범한 사람들 중에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 등 매일 얼굴을 맞대고 있는 사람들 중에 평소에는 살갑고 친밀하고 서로 허심탄회하게 말을 주고받는 그런 사람들이 뒤돌아서 서는 험담하고 욕하고 속이고 거짓을 말하곤 하는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나는 위선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없는 사회였으면 하지만 없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어떤 때 만화 영화의 주인공처럼 '정의의 사도" 가 되어 그런 사람들을 응징하는 꿈을 꿔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그런 사람들과도 어울려 지내는 수밖에요. 다만 아주 소극적인 방법이지만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같이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요. 그쪽에서 나를 못살게 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좋겠지요. 아니면 내가 먼저 그쪽을 알아보지 못했다면 나중에라도 알게 된 순간에 그때부터라도 같이 어울리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요?


당신은 혼자 있는 것이 싫은 가요?

당신은 사교성이 좋으니까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하지요. 그렇다고 해서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혼자라서 좋은 점들도 있답니다.

나는 요즘 열심히 걷기 운동을 합니다. 딱히 운동이라면 운동이겠지만 운동이라기 보다 시간이 나면 걸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대 혼자라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이리저리 걸을 수 있는데 옆에 누구라도 있다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게 됩니다. 어쩌다 갈림길이 나오면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결정해야 한다거나 또는 조용한 숲길로 향하고 싶은데 자꾸 저잣거리 쪽으로 가자고 할 때처럼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가 생기게 되거든요. 그냥 상대를 무시하고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겠지요? 그러니 걷는 것도 혼자일 때가 편하고 좋지 않을까요?

그리고 어쩌다 여럿이 모여 있을 때 식사를 하기 위해서 음식점을 결정하는 문제도 많이들 부딪치게 되지요. 혼자라면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는 정도로 가볍게 먹을 것도 여럿이면 서로의 취향과 식성을 생각해 줘야 하니까 당연히 결정하는데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요.

또 여럿이 모여있으면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나로서는 별로 할 말도 없기도 하지만 대화 내용에 거의 아는 바가 없을 경우에 참 난감합니다. 같이 어울릴 수도 없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갈 수도 없을 때 그럴 때 혼자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혼자라는 것은 자유입니다. 사람들은 외롭다 또는 고독하다고 말들 합니다. 외롭다는 것은 상대적이지만 고독은 절대적이라지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관계를 하는 입장에서 혼자라는 것은 외로움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혼자라는 것이 원초적 의미로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그리고 인생 마지막 순간조차도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 그것이 고독이라는 것이 아닐까요?

나는 간혹 생각해 봅니다. 사람은 간혹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말이지요. 물과 기름처럼 많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 겉도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는 더없이 혼자 있음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혼자 있는 연습을 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외로움을 덜 느끼고 원초적인 고독도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당신은 아마 좋은 생각이라고 하지 않겠지만 말이죠


당신은 행복하신가요?

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 친구의 딸 결혼식장에 다녀왔습니다.

우리 나이 또래는 거의 자녀들을 시집 장가를 보냈는데 때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모처럼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한 친구가 신부 입장을 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신부가 좀 나이가 들었군 해서 모두들 얼굴에 웃음 지었지만, 우리들의 웃음보다 시집보내는 친구와 그 아내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이래도 웃고 저래도 웃고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요즘은 결혼할 시기가 한참 지나서도 시집 장가를 가지 않은 자녀들이 있는 주변의 친구들이나 친척들을 보면 걱정 근심으로 별로 얼굴이 밝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딸을 시집보내면서 예전 같으면 신부의 어머니 쪽은 눈물을 훔치곤 했었는데 오히려 얼굴이 밝고 웃음이 가득한 이유도 알만 하겠더군요.

신부 입장을 뒤로하고 친구들은 우르르 피로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요즘은 바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예식이 끝나기도 전에 피로연장에 하객들이 벌써들 자리들 잡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한 쪽 구석에 자리를 하고 오랜만이라 이야기꽃들을 피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식사한 후 나가서 당구 한 게임하자면서 요즘 내기 당구를 하던 이야기를 해 댑니다. 어떤 친구는 동네 문화회관에서 사교댄스 모임 회장을 맡아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뭐 콜라택이 어쩌고저쩌고합니다. 누군가 가성비가 아주 좋지 하면서 맞장구를 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떠들어 댑니다. 모두들 즐거운 것 같았습니다. 옆에서 가만히 보니 모두들 행복해 보였습니다.

옛 회사 동료들인대  그들 중에는 대 부분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제2직장 생활들을 하고들 있어서 인지 여유스러워 보였습니다. 나는 회사를 그만둔 후 다른 길로 들어섰다가 이제는 그만두고 지금은 그야말로 백수건달로 지내고 있는 처지라 그들과 어울리는 기회가 많지 않아서인지 좀 서먹서먹한 입장이었습니다. 결국은 좀 주눅 들어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혼자 불행하다고 느꼈을까요?

당신은 이야기하곤 합니다. 아들 장가보내고 딸 시집보내고 이제 손주 아이들 뒷바라지해주고 있는 지금이 행복한 것 아닌가요 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생각의 방향을 조금만 바꾸면 불행과 행복이 보입니다. 행복을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내면,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거기에 행복이 있는 것을 우리는 자꾸 밖에서 남들과 비교하는 속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행복을 남에게 자랑하고 행복한 티를 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니 우선은 남과 비교하거나 남을 의식하거나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보다 조용히 내면의 깊은 곳을 들여다볼 줄 아는 지혜를 배워야겠습니다. 그러면 자연 매사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깨닫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삶을 좀 더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가 보는 것이 습관 되다 보면  행복이다 불행이다 하는 것보다 더 값진 삶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 정도로 넘어간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손주 아이가 뒷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말입니다.

" 어 태권도장으로 가야 하는데...."

직진 차선으로 들어서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당신의 그 말에 직진 차선에 차가 없었고 마침 좌회전 신호가 떨어져서 자연스럽게 좌회전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태권도장으로 향할 수 있었지만 순간 내 얼굴은 화난 채

" 아니 그러게 좀 미리미리 이야기를 해 달라니까..."

순간 당신의 얼굴도 분명 화가 난 얼굴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쳐다보지도 않았어도 그러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뒷좌석에 있던 손주 아이는 눈치를 채지 못하고

" 어 할아버지는 어디로 갈려고 했는데?" 하기에 " 응 집으로 가는 줄 알았지." 하고는 끝났지요. 그러니 큰 소리를 냈다거나 그 문제로 계속 티격태격했다면 문제가 있을 수 있었지만 그냥 지나가서 다행인 것입니다.

요즘 내가 위파사나 수행법의 명상에 관한 글을 열심히 읽은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이 명상법을 언급하는 바람에 요즘 화제가 되고 있지요. 나중에 자주 이 명상법에 관해서는 글을 올려보겠지만 대략 간단히 설명하자면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걸을 때는 걷는 것에 밥을 먹을 때는 밥 먹는 순간순간 등 일상생활의 모든 행위의 순간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모든 행위를 집중해서 알아차리면 망상이라든가 고통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사라지거나 들어오지를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화를 내거나 슬픔을 느끼거나 일체의 감정적 상황도 그 순간 알아차리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죠.

학교 다닐 때 독일어 첫째 수업시간에 선생이 독일어는 웃으면서 시작했다가 울면서 나온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는데 이 위파사나 수행법은 쉽고 간단해서 처음에는 들어가기는 쉬운데 수행하면 할수록 끝이 없이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쉽고 간단한 수행법만은 아닙니다. 당신은 명상법이나 이런 수행법을 이야기하면 분명 불교 쪽이지 하면서 종교적 색채를 떠올리겠지만 딱히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일반인도 명상법으로 접근하는데 아무 무리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차츰 설명을 해 드리도록 하지요.

이런 수행법을 일상생활에서 계속 알아차림을 하려고 노력하니까 좀 변화가 있는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노력해보려는 마음이 조금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오늘도 큰 소리 내지 않고 잘 지나간 듯합니다.

사실 부부 사이에 대화라는 것이 오랜 세월을 같이 살다 보면 사소한 몸짓 눈짓만으로도 서로 의사소통이 때문인지 별로 많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어디서 들은 농담으로 '왔어. 저녁은? 그럼 밥 먹어.'가 하루 대화의 전부라면서요? 더구나 남자들을 그저 '응. 아니. 응.' 그리고 끝이라더군요. 그것이 우리네 부부들의 대화법이는 우스갯소리가 별로 낯 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부간에도 대화가 많지 않다면 소통이 잘 될까요? 바로 가정에서부터 부부간에도 대화가 잘 되면 좀 더 화목한 가정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 하루 큰 소리 안 내고 지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되도록이면 계속 큰소리 안 내고 조용한 대화가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은 빠르게 변화되고 있습니다.

어느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역사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분들에게 인류에게 역사적으로 행복했던 시대는 언제였는가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답이 바로 지금 현대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들 이야기하지 않나요? 예전에는 참 좋았어.라고 말이지요. 딱히 뭐라고 하긴 뭣해도 그냥 옛날이 좋았다라고들 하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정작 역사적으로 바라볼 때 지금이 가장 좋은 시대라니.

가만히 생각해 보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 참 편한 세상 아닌가요? 무엇보다도 휴대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일상생활의 변모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선 언제 어디서라도 연락할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이 됩니다. 그리고 그 휴대폰으로 많은 정보도 주고받습니다. 모르는 일이 생겨서 알고 싶거나 궁금한 일이나 곤란한 문제 등 필요할 때마다 휴대폰을 통해서 손쉽게 접근할 수 있지요.

그중에서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카톡을 이용하면서 알려오는 많은 정보들 이야기입니다. 내가 이용하는 카톡은 이제는 많이 줄여서 단톡방 두세 개, 개인 체팅용 카톡 서너 개 정도입니다. 한때는 여기저기 카톡을 연결했었지만 너무 쉬지 않고 들어오는 내용들에 질려서 빠져나왔는데도 아직도 적지 않습니다. 어느 시기가 되면 아예 끊어버릴까도 생각 중입니다만 아직은 미련이 남아서 연결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나이가 들다 보니 들어오는 내용들이 건강에 대한 사항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노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들도 많더군요. 그중에서 나이를 먹어서도 사회생활, 즉 사회적 교제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더군요. 나이를 먹어서 외로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친구들도 자주 만나고 모임에도 자주 나가야 한다는 말에 조금은 수긍이 가면서도 꼭 그래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히려 나는 그 많던 모임도 숫자와 횟수를 줄여나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임이라는 것이 피곤함만 더하면 더했지 쓸데없는 짓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외롭지 않기 위해서 교제를 활발히 하라는 뜻은 알겠지만 그러나 외로움 피하려다 오히려 심한 스트레스 받아올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동안 사람들 속에서 복 닥이며 살아왔으니 이제는 오히려 좀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을 듯도 싶습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시간을 보낼 줄 알아야 하는데 우리 또래의 사람들은 오로지 일하고 돈 벌고 하는 일에만 빠져서 살아오다 보니 혼자가 되었을 때 혼자 시간 보낼 줄을 모른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요즘 나는 혼자서 시간 보내기에 열심입니다. 그것도 연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라도 더 나이가 들어서 이제 주변 친구들마저 만나기 어려워질 때를 생각해서라도 연습을 해야 합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이니 혼자라는 것을 너무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혼자를 오히려 즐겨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