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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횡설수설'에 해당되는 글 48

  1. 2019.01.24 [24] 아! 편하다.
  2. 2019.01.23 [23] 몽마르뜨 공원
  3. 2019.01.22 [22] 행복을 찾아서
  4. 2019.01.21 [21] 내면의 고요
  5. 2019.01.20 [20번째]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6. 2019.01.19 [19信] 아이들 돌봐주기

[24] 아! 편하다.

2019. 1. 24. 21:57 | Posted by 랑세

전에 다니던 회사 동료한테서 '얼굴이나 한번 보자'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얼굴이나 보자고? 그건 모처럼 만나서 식사나 하자는 말하고 같습니다. 그래서 둘이서만? 했더니 다른 친구 한 사람도 연락이 되었는데 괜찮겠냐고 합니다. 뭐 안될 거 없지 했습니다.

요즘 만나는 장소를 정할 때 가장 편한 곳이 지하철역입니다. 서로서로 접근하기도 쉽고 만나서 다음 장소로 옮겨 가기도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Y 역에서 저녁 6시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한 겨울에 6시면 퇴근 시간이라 한창 붐비는 시간입니다. 동절기에는 많은 곳이 5시에 퇴근하니까요. 15분 전쯤에 도착해서 두리번거리는데 그중 한 친구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그리고 잠시 후 한 친구도 도착해서 간단히 안부들을 묻고는 다음 장소로 이동을 했습니다.

우리 나이 때에 가장 편하고 쉽게 주문할 수 있는 것이 '삼겹살'이죠. 주변에 좀 크다 싶은 음식점으로 들어갔습니다. 넒은 홀에 한두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을 뿐 휑한데 우리는 한 쪽 구석으로 가서 앉으라는 종업원을 따라갔습니다. 구석진 자리는 왠지 썰렁했습니다.

우리 셋은 술잔을 기울이며 옛이야기부터 시작들을 했습니다. 나는 조용히 귀 기울여 들으면서 술잔을 비워나갔습니다. 둘이서는 현재 일하는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둘 다 현재 어느 현장인가 감리단장들을 하고 있으니까 자연 그쪽 이야기로 옮겨 갔습니다. 나는 이상하게 몸 위쪽은 별로 추운 줄 모르겠는데 갑자기 아래쪽 다리 부분에 한기를 느꼈습니다. 왜 이렇게 춥지? 나는 백수라서 그들 이야기에 끼어들 화재 꺼리기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같은 분야에 근무하는 친구들의 근황으로 이야기가 계속되었습니다. 나는 계속 혼자 따르고 혼자 마시고 그러다 그냥 맞장구로 고개를 주억거려주고 있었습니다. 이제 슬슬 한기가 위쪽으로도 올라오더군요.

술판이 끝나고 'N 분의 일'로 하자는 내 말은 공중에 맴돌고 둘 중 하나가 계산을 끝내고 밖으로 나가더군요. 나는 거의 와들와들 떠는 수준으로 한기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한 친구가 그러면 2차는 자기가 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둘이 앞장서서 가기에 나는 뒤로 쳐졌다가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 다른 골목으로 그들이 가는 반대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다시 큰 길로 나와 지하철역으로 가다 보니 온몸의 한기는 온데간데없어졌습니다. 나는 크게 기지개를 펴서 몸을 활짝 열고 몇 번 제자리 뛰기를 한 다음 역 계단을 힘차게 뛰어내려갔습니다. 몸의 한기가 사라졌습니다. 아! 편하다.

 

[23] 몽마르뜨 공원

2019. 1. 23. 16:17 | Posted by 랑세

아파트 단지는 뒷산과 인접되어 있습니다. 뒷산은 야트막한 야산입니다. 서울 중심에 이런 야산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이 야산은 길게 뻗어 있어서 끝까지 갔다가 오면 거의 한 시간 반 정도 걸립니다. 아침나절에 운동 삼아 걷기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길은 잡목이 우거져서 어떤 곳을 지날 때는 깊은 산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고요와 침묵이 어려 있습니다.


이 야산에는 몽마르뜨 공원이 있습니다. 이 공원은 인근에 서래 마을이라는 곳에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거주해서 붙혀진 이름으로 곳곳에는 프랑스 화가들을 그려 넣은 포토존이라는 곳도 있고 불어 시구들을 군데군데 입간판에 붙어 있기도 합니다.


그런 곳이지만 나도 처음에는 잘 몰랐습니다. 몇 년 전 이 근처를 지나가는데 어떤 아가씨가 “몽마르뜨 공원이 어디예요?"하고 묻는데 나는 그때 그런 공원이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어? 그런 공원이 있어요?”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몽마르뜨 언덕이라면 몰라도 몽마르뜨 공원이라니.... 하면서 지나친 적이 있었는데 바로 옆을 지나면서도 몰랐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미국 뉴욕에 일이 있어서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유명한 관광지들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맨해튼에 있는 센트럴 파크입니다. 그곳을 몇 번 갔었는데 한참을 걷다가 주저앉아 쉬면서 둘러보니 넓기가 가늠이 안될 정도였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도시에서 그것도 번화가에 인접해서 이런 공원을 갖고 있는 그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또 하나 런던의 하이드 파크는 크기에 있어서 나 공원 안의 시설물들과 나무, 꽃 벤치 하나하나까지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공원 한구석 벤치에 앉아서 무릎에 뜨개질 바구니를 놓고 한가로이 뜨개질하는 노 부인의 모습은 한 폭의 수채화 같았습니다. 런던에는 그 밖에도 많은 공원들이 도시 곳곳에 있어서 언제나 접근이 용이했습니다.


서울에 그런 대 도시의 공원처럼 시설이나 규모나 관리가 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녹지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됩니다.


그런대 이런 도시공원들이 ‘도시공원 일몰제’라는 제도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원 설립을 위해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한 뒤 20년이 넘도록 공원 조성을 하지 않았을 경우 도시공원에서 해제하는 제도라고 합니다.


그것이 1999년 10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었다니 판결 후 20년이 되는 2020년이 되면 이 일몰 제도가 시행이 된다고 합니다. 다행히 서울시에서는 도시공원 가운데 사유지 전체를 사들이기로 했다고 합니다. 제발 도시공원의 사유지를 보상에 만전을 기해서 토지 소유주들도 재산상 손실을 보지 않게 해주고 시민들을 위해서는 편안하고 안락한 녹지 공원을 제공함으로써 도시 공간을 녹색 공간으로 유지 되도록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2] 행복을 찾아서

2019. 1. 22. 14:45 | Posted by 랑세

일주일에 두세 차례 유머 편지를 메일로 보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유머 클럽을 운영하면서 강좌도 열고 책도 쓰시는데 일상을 유머로 생활하시면서 요즘도 아내와 하루 한가지 이상 재미있는 이야기나 유머를 하면서 지낸다고 합니다.

그분의 글을 읽고 있다 보면 재미있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자기 개발서 이상 가게 감동을 주는 글도 있답니다. 얼마 전에 보내온 편지를 읽다가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서 여기 옮겨 볼까 합니다.

'멕시코 한 동네에 뜨거운 온천과 시원한 냉천이 함께 나오는 온천이 있었답니다. 이 동네를 들른 관광객들은 그걸 보고서 부러워하면서 가이드에게 이 동네는 축복이라고 하자 가이드는 아닙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축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비누는 나오지 않느냐? 하고 불평을 한다고 합니다. 왜 불평을 하지?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데 그것은 현재 자신을 불행하다는 전제에서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생각을 조금 바꿔서 어떻게 하면 이 행복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고 한다면 그것은 지금 현재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이 전제이죠.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 내가 얼마나 많이 가졌고 얼마나 누리고 있는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최규상의 유머 편지 중에서.

여기서 그분은 유머 코칭을 하시는 분인데 유머로서 깊은 인생의 깨달음을 전파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생각의 전환. 사람들은 자신은 불행, 슬픔, 고통, 피곤, 권태 속에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자신을 구렁텅이 속에 빠진 것으로 생각하기보다 나는 지금 행복하고 즐겁다고 마음을 가지면 생각과 생활 자체가 변화를 보이지 않을까요?

한 사내가 행복을 찾아 큰 산을 넘고 내를 건너고 온갖 고난을 겪으며 굶주림과 피곤과 고통 속에 헤매다가 겨우 다시 집으로 돌아와 다시 아내와 자식들을 만나고 보듬어 보니 거기에 행복이 있더라는 글처럼 행복은 먼 곳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또 다른 깨달음을 느끼게 합니다. 지금 바로 여기에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21] 내면의 고요

2019. 1. 21. 22:52 | Posted by 랑세

사교성이 좋으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즐겁게 지낼 수 있습니다. 사교성은 어쩌면 타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려서부터 남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같이 있어도 늘 혼자 외떨어져서 지냈습니다. 자연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고 모임이 있어도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참석을 피하곤 했었습니다. 가장 어려웠을 때가 직장 생활하면서 그런 속내를 밝힐 수 없어서 여간 힘든 게 아니었지요. 겉으로는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없는 듯 행동하고 어울려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퇴직을 한 후 가장 좋은 점은 내가 가기 싫은 자리에는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지요.

사교성이 좋은 사람들은 남들과 어울려 떠들고 웃고 혹은 장난도 치면서 잘들 지내지만 그런 모임 후 혼자가 되었을 때도 그 즐거웠던 분위기가 이어지던가요?

머리는 온갖 것들을 만들어 냅니다. 고통, 불안, 슬픔, 즐거움, 괴로움, 피곤함, 거부감 등등을 말이죠. 하지만 머리에서 만들어 내는 것들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슬펐다가도 즐거운 일이 생기면 언제 슬폈느냐는 식으로 바뀝니다. 피곤하다가도 맛이 있는 음식이 생기면 생기가 도는 식이지요.

머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일시적이라면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고요는 넓고 깊고 무궁합니다. 머리에서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을 가슴속 깊은 내면의 고요 속을 지나가게 하면 마음이 평안해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면의 고요함은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고 모든 어려움을 집어넣어도 넘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고요 속에 모든 것들을 집어넣었다가 꺼내도 절대 고요는 사라지지도 닳아없어지지도 않습니다.

이제 머리로 만들어 내든 모든 것들을 마음의 고요 속에 넣어놓아야겠습니다. 그리고는 하나하나 꺼내서 일상생활을 평온하고 조용한 상태가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글을 쓰려면 생각을 정리해야 하고 정리된 생각을 순서대로 나열해야 한다고 합니다.. 생각이 없다면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까요? 무언가를 생각한다면 그 생각의 꼬투리를 잡고 생각에 생각을 이어나가야 한답니다. 한 생각에서 다음 생각으로 이어지고 그 생각에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 나가야 한다는군요. 그것이 글쓰기의 가장 기본이라고 하네요.

연암의 열하일기를 읽다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글 자체가 생각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긴 글을 한참 전에 나눈 이야기를 기초로 해서 쓴 글이기 때문이지요. 중국에 가는 사신을 따라 아무 관직도 없이 관광을 목적으로 갔다가 여기저기 많은 현지인들을 만나고 이야기 한 것들을 쓴 글들인데 그 이야기나 생각을 요즘처럼 컴퓨터가 있었을 리 만무하고 필기구가 연필이나 볼펜 같은 것도 아니고 편리하지도 않은 붓과 벼루에다 요즘 같은 노트가 아닌 종이를 들고 다니면서 필담을 나누거나 혹은 기억했다가 나중에 정리해서 쓴 글이니 더욱 놀랍더군요.

연암은 많은 글을 읽었을 것이고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행 당시에 간단하게 글을 써 놓았다가 나중에 기억 속에서 끄집어 냈음이 분명한 글들인데 수많은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과 주변 경치와 건물들에 대한 것들 하다못해 이색 풍물들에 대해서 세세한 부분들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는지 그 기억력에 또 한 번 놀랄  뿐입니다.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더욱 놀라운 것은 연암의 묘사력입니다. 중국의 술집 문화를 보면서 기술한 부분을 보면 ‘술집 누각의 아래위는 40여 칸으로 난간을 아로새기고 그림 같은 기둥에다가 울긋불긋 휘황찬란하고, 분칠을 한 벽과 비단을 바른 창문이 묘연히 마치 신선이 사는 집 같다. 좌우에는 고금의 이름난 그림과 명가의 글씨 들을 많이 걸어 놓았고, 또 술자리의 아름다운 시들이 많이 있었다.’라고 하면서 그런 집에서 노니는 사람들에 대해서 대궐에서 공무를 보고 퇴궐하면서 고관 대작들이 들러서 술 한 잔 나누고 시와 그림을 서로 나누고 가무도 즐기는 그런 문화였음을 엿보고는 그처럼 풍류가 있는 정경을 부러워하면서 조선의 술 먹는 문화에 대해서도 썼는데 조선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을 마셔도 풍류보다는 잔을 큰 대접에다 따라서 입에 부어대는데 취하도록 마신다. 취하고 나면 꼭 시비가 붙고 시비가 붙으면 때려 부수고 싸움박질을 해대니 거기에 무슨 풍류가 깃들겠는가? 하고 자문을 하고 있더군요.

열하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가 있고 당시의 문물과 규율과 사회 풍습 등 많은 부분에서 옛 것을 느낄 수 있어서 2백여 년 전의 글인데도 현실감과 박진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래서 고전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아직 다 읽지 못해서 계속 읽으면서 그때그때 느낌을 다시 쓰겠습니다.


[19信] 아이들 돌봐주기

2019. 1. 19. 21:32 | Posted by 랑세

지난 2주 동안 친손주 외손주 뒷바라지하느라고 차로 열심히 실어 날랐습니다. 겨울 방학 동안 문화원에서 어린이를 위한 특강에 참여하기 위해 외손주는 부산에서 올라왔습니다. 친손주는 몇 년 전부터 돌봐주기 위해서 아파트를 같은 동으로 우리가 이사를 왔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올라오고 내려가고 하면 되지만 외손주는 2주 동안을 같이 지내야 했습니다. 딸이 결혼하고 2주일씩 지내기는 처음이었지요.

집안이 시끌벅적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1학년 두 사내아이들은 만나기만 하면 뛰는데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집사람은 음식을 장만해서 먹이기까지 하느라고 이리저리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겠지요. 옆에서 보기에 안쓰러웠지만 그래도 입가엔 웃음이 끊이지 않아서 다행이었지요.

그런대 이제 2주가 훌쩍 지나가고 끝났습니다. 홀가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적적하기도 하군요. 갑자기 집안이 절간이 된 것처럼 조용합니다.

특강이 끝나고 외손주는 이제 부산으로 다시 가야 합니다. 그동안 외손주와 딸이 집에 와있으므로 해서 고생하게 해서 죄송하고 고맙다고 딸네 시댁에서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하시더군요. 뭔 고생이냐고 당연한 일인데 일부러 그러실 필요는 없다고 해도 한사코 올라오시겠다고 하시더군요. 사돈 네는 서울 근교에 살고 있어서 아무래도 먼 걸음 하시는 건데도 굳이 오시겠다고 해서 같이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요즘은 주변을 둘러보면 아들은 장가보내 애가 생기면 처가에서 보살펴 주고 딸을 시집보내면 자기 집에서 애를 돌봐주는 것이 대세인 모양입니다. 그러니 아들만 둘이면 장가보내놓으면 아주 홀가분하게 생활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딸만 있는 집은요? 글쎄요.

우리는 아들네는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애를 돌봐줘야 하는데 처갓집에서 사정이 여의치 않아 우리가 돌봐주고 딸아이는 전업주부라 애를 키우고 있습니다. 딸네는 사위가 외국으로 발령 나는 바람에 근 5년을 외국에서 살다가 이제 귀국해서 부산에 자리를 잡았지요. 그러니 외손주와 2주씩이나 같이 지내는 것은 처음일 수밖에요.

점심 식사를 하는데 외손주가 지 엄마한테 뭐라고 소곤거립니다. 그러더니 딸아이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어댑니다. 뭐라고 하냐니까 애가 친할머니하고 외할머니하고 잘 아는 사이냐고 묻더랍니다. 그러니까 사돈끼리 이렇게 모이는 것을 그 애는 처음 보는 것이지요. 처음 딸아이 결혼해서는 서울에 살고 있었고 시댁도 서울에 있어서 그래도 자주 만났었지만 그땐 외손주가 너무 어려서 기억이 없을 테고 이제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모처럼 사돈끼리 만나는 자리에 있고 보니 그 애는 서로 처음 보는 사이로 알고 있는데 이야기를 잘 나누는 것이 이상해 보였든 모양입니다. 그래서 네 엄마의 엄마는 외할머니고 니 아빠의 엄마는 친할머니고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결혼했으니 네가 있는 것 아니냐? 그러니 친할머니하고 외할머니가 서로 잘 아는 사이 지하고 설명해주니 알겠다고는 하면서도 얼굴 표정은 그래도 이해가 덜 된 듯했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웃으면서 모처럼의 식사가 즐거웠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요. 아이들은 하나일 때와 둘일 때가 틀립니다. 혼자일 때는 말도 잘 듣고 조용히 잘 놀다가도 둘만 되면 금방 틀려지더군요. 말도 안 듣고 떠둘고 뛰고 장난감들을 집어던지는 등 시끄러워지더군요. 그런대 이제 친손주 혼자이니 아마 다시 조용해질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좀 심심해지기는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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