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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행복하신가요?

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 친구의 딸 결혼식장에 다녀왔습니다.

우리 나이 또래는 거의 자녀들을 시집 장가를 보냈는데 때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모처럼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한 친구가 신부 입장을 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신부가 좀 나이가 들었군 해서 모두들 얼굴에 웃음 지었지만, 우리들의 웃음보다 시집보내는 친구와 그 아내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이래도 웃고 저래도 웃고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요즘은 결혼할 시기가 한참 지나서도 시집 장가를 가지 않은 자녀들이 있는 주변의 친구들이나 친척들을 보면 걱정 근심으로 별로 얼굴이 밝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딸을 시집보내면서 예전 같으면 신부의 어머니 쪽은 눈물을 훔치곤 했었는데 오히려 얼굴이 밝고 웃음이 가득한 이유도 알만 하겠더군요.

신부 입장을 뒤로하고 친구들은 우르르 피로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요즘은 바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예식이 끝나기도 전에 피로연장에 하객들이 벌써들 자리들 잡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한 쪽 구석에 자리를 하고 오랜만이라 이야기꽃들을 피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식사한 후 나가서 당구 한 게임하자면서 요즘 내기 당구를 하던 이야기를 해 댑니다. 어떤 친구는 동네 문화회관에서 사교댄스 모임 회장을 맡아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뭐 콜라택이 어쩌고저쩌고합니다. 누군가 가성비가 아주 좋지 하면서 맞장구를 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떠들어 댑니다. 모두들 즐거운 것 같았습니다. 옆에서 가만히 보니 모두들 행복해 보였습니다.

옛 회사 동료들인대  그들 중에는 대 부분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제2직장 생활들을 하고들 있어서 인지 여유스러워 보였습니다. 나는 회사를 그만둔 후 다른 길로 들어섰다가 이제는 그만두고 지금은 그야말로 백수건달로 지내고 있는 처지라 그들과 어울리는 기회가 많지 않아서인지 좀 서먹서먹한 입장이었습니다. 결국은 좀 주눅 들어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혼자 불행하다고 느꼈을까요?

당신은 이야기하곤 합니다. 아들 장가보내고 딸 시집보내고 이제 손주 아이들 뒷바라지해주고 있는 지금이 행복한 것 아닌가요 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생각의 방향을 조금만 바꾸면 불행과 행복이 보입니다. 행복을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내면,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거기에 행복이 있는 것을 우리는 자꾸 밖에서 남들과 비교하는 속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행복을 남에게 자랑하고 행복한 티를 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니 우선은 남과 비교하거나 남을 의식하거나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보다 조용히 내면의 깊은 곳을 들여다볼 줄 아는 지혜를 배워야겠습니다. 그러면 자연 매사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깨닫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삶을 좀 더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가 보는 것이 습관 되다 보면  행복이다 불행이다 하는 것보다 더 값진 삶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 정도로 넘어간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손주 아이가 뒷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말입니다.

" 어 태권도장으로 가야 하는데...."

직진 차선으로 들어서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당신의 그 말에 직진 차선에 차가 없었고 마침 좌회전 신호가 떨어져서 자연스럽게 좌회전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태권도장으로 향할 수 있었지만 순간 내 얼굴은 화난 채

" 아니 그러게 좀 미리미리 이야기를 해 달라니까..."

순간 당신의 얼굴도 분명 화가 난 얼굴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쳐다보지도 않았어도 그러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뒷좌석에 있던 손주 아이는 눈치를 채지 못하고

" 어 할아버지는 어디로 갈려고 했는데?" 하기에 " 응 집으로 가는 줄 알았지." 하고는 끝났지요. 그러니 큰 소리를 냈다거나 그 문제로 계속 티격태격했다면 문제가 있을 수 있었지만 그냥 지나가서 다행인 것입니다.

요즘 내가 위파사나 수행법의 명상에 관한 글을 열심히 읽은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이 명상법을 언급하는 바람에 요즘 화제가 되고 있지요. 나중에 자주 이 명상법에 관해서는 글을 올려보겠지만 대략 간단히 설명하자면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걸을 때는 걷는 것에 밥을 먹을 때는 밥 먹는 순간순간 등 일상생활의 모든 행위의 순간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모든 행위를 집중해서 알아차리면 망상이라든가 고통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사라지거나 들어오지를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화를 내거나 슬픔을 느끼거나 일체의 감정적 상황도 그 순간 알아차리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죠.

학교 다닐 때 독일어 첫째 수업시간에 선생이 독일어는 웃으면서 시작했다가 울면서 나온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는데 이 위파사나 수행법은 쉽고 간단해서 처음에는 들어가기는 쉬운데 수행하면 할수록 끝이 없이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쉽고 간단한 수행법만은 아닙니다. 당신은 명상법이나 이런 수행법을 이야기하면 분명 불교 쪽이지 하면서 종교적 색채를 떠올리겠지만 딱히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일반인도 명상법으로 접근하는데 아무 무리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차츰 설명을 해 드리도록 하지요.

이런 수행법을 일상생활에서 계속 알아차림을 하려고 노력하니까 좀 변화가 있는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노력해보려는 마음이 조금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오늘도 큰 소리 내지 않고 잘 지나간 듯합니다.

사실 부부 사이에 대화라는 것이 오랜 세월을 같이 살다 보면 사소한 몸짓 눈짓만으로도 서로 의사소통이 때문인지 별로 많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어디서 들은 농담으로 '왔어. 저녁은? 그럼 밥 먹어.'가 하루 대화의 전부라면서요? 더구나 남자들을 그저 '응. 아니. 응.' 그리고 끝이라더군요. 그것이 우리네 부부들의 대화법이는 우스갯소리가 별로 낯 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부간에도 대화가 많지 않다면 소통이 잘 될까요? 바로 가정에서부터 부부간에도 대화가 잘 되면 좀 더 화목한 가정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 하루 큰 소리 안 내고 지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되도록이면 계속 큰소리 안 내고 조용한 대화가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은 빠르게 변화되고 있습니다.

어느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역사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분들에게 인류에게 역사적으로 행복했던 시대는 언제였는가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답이 바로 지금 현대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들 이야기하지 않나요? 예전에는 참 좋았어.라고 말이지요. 딱히 뭐라고 하긴 뭣해도 그냥 옛날이 좋았다라고들 하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정작 역사적으로 바라볼 때 지금이 가장 좋은 시대라니.

가만히 생각해 보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 참 편한 세상 아닌가요? 무엇보다도 휴대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일상생활의 변모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선 언제 어디서라도 연락할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이 됩니다. 그리고 그 휴대폰으로 많은 정보도 주고받습니다. 모르는 일이 생겨서 알고 싶거나 궁금한 일이나 곤란한 문제 등 필요할 때마다 휴대폰을 통해서 손쉽게 접근할 수 있지요.

그중에서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카톡을 이용하면서 알려오는 많은 정보들 이야기입니다. 내가 이용하는 카톡은 이제는 많이 줄여서 단톡방 두세 개, 개인 체팅용 카톡 서너 개 정도입니다. 한때는 여기저기 카톡을 연결했었지만 너무 쉬지 않고 들어오는 내용들에 질려서 빠져나왔는데도 아직도 적지 않습니다. 어느 시기가 되면 아예 끊어버릴까도 생각 중입니다만 아직은 미련이 남아서 연결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나이가 들다 보니 들어오는 내용들이 건강에 대한 사항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노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들도 많더군요. 그중에서 나이를 먹어서도 사회생활, 즉 사회적 교제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더군요. 나이를 먹어서 외로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친구들도 자주 만나고 모임에도 자주 나가야 한다는 말에 조금은 수긍이 가면서도 꼭 그래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히려 나는 그 많던 모임도 숫자와 횟수를 줄여나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임이라는 것이 피곤함만 더하면 더했지 쓸데없는 짓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외롭지 않기 위해서 교제를 활발히 하라는 뜻은 알겠지만 그러나 외로움 피하려다 오히려 심한 스트레스 받아올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동안 사람들 속에서 복 닥이며 살아왔으니 이제는 오히려 좀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을 듯도 싶습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시간을 보낼 줄 알아야 하는데 우리 또래의 사람들은 오로지 일하고 돈 벌고 하는 일에만 빠져서 살아오다 보니 혼자가 되었을 때 혼자 시간 보낼 줄을 모른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요즘 나는 혼자서 시간 보내기에 열심입니다. 그것도 연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라도 더 나이가 들어서 이제 주변 친구들마저 만나기 어려워질 때를 생각해서라도 연습을 해야 합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이니 혼자라는 것을 너무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혼자를 오히려 즐겨야 하지 않을까요?


남을 배려하는 두 이야기있습니다.

하나는 이런 내용입니다.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몸이 불편한 엄마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엄마는 구겨진 돈 만 원을 들고 동네 모퉁이 구멍가게에 아이 분유를 사러 갔습니다. 분유 한 통을 들고 계산대로 가져가니, 분유가 만 육천 원이었습니다. 그 엄마는 분유를 사지 못하고 힘없이 돌아서서 나가고, 주인은 분유를 제 자리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꽝”하고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아이 엄마를 불렀습니다. “꽝”이 무슨 소리였겠습니까? 주인은 분유통을 제자리에 올려놓고 슬퍼서 땅에 떨어뜨린 것입니다. 그 소리가 “꽝”소리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아이 엄마를 불러 세우고서는 찌그러진 분유는 “반값”이라고 하면서, 만 원을 받고 이천 원을 거슬러 주었습니다. 아이 엄마는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몇 번이곤 가다가 돌아보고서 “감사하다.”라고 인사를 합니다.

조 두레박 신부의 영적 일기 중에서

그리고 또 한 이야기는 아래 사진을 볼까요?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몸이 불편한 가난한 여인 이야기에서는 구멍가게 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남을 배려하는데도 이처럼 조금만 신경 쓰면 상대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도움을 준 마음이 돋 보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에서는 자기 우선이라는 생각이 주변에 얼마나 불편을 주고 피해를 입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일본의 줄 서는 문화는 남을 배려하고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책을 본다거나 조용히 서 있는 모습이 질서가 있어 보이는군요.

나는 생각해 봅니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방법에 있어서도 배려하면서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질서를 지키는 마음들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건 자기 자신보다도 남을 우선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요? 그런대 그런 마음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건 평상시에 또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부터 습관이 되도록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정에서부터 제대로 생활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결국엔 사회가 잘 이루어지는 것이고 사회가 잘 이루어지면 더 나아가 국가가 제대로 서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간혹 남을 배려하고 질서를 지키는 것이 자기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볼 때는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남보다 자기가 잘나고 남보다 내가 먼저 그리고 내가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려서부터 자리 잡게 되면 어른이 되어서도 습관적으로 마음에 자리 잡은 것이겠지요.

당신이야 언제나 남을 우선시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베 있기 때문에 항상 좀 손해를 보는 듯해서 답답했는데 어디서 보니 좀 손해를 보면서 사는 삶이 오히려 정신적 긴장을 덜하게 하므로 건강에도 좋고 결국에는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삶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요 나야 당신 덕택에 이렇게 지내고 있고 또 아직 어린 손주 아이들도 또래들과의 어울림과 영약 함보다는 밝게 지내도록 하는 당신의 모습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 답니다. 고마워요.


요즘 아시안 컵 축구가 시작되어 한국 축구가 우승했으면 하는 기대감에 관심들이 지대하더군.


축구는 우리나라에서 야구와는 다른 차원의 관심이 보이곤 하잖아. 평상시에는 야구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이 팀 저 팀 각자 응원하는 팀이 있어서 지고 이기는 것에 열성들을 보이지. 그건 관중들이나 시청자들의 요구가 그만큼 야구에 편중돼 있어서 이겠지?


나는 야구 게임은 정 볼 것이 없으면 어쩌다 보는 편이고 축구는 그야말로 빅게임이라면 관심을 갖고 보는 편이지만 사실 당신이나 나나 별로 TV 보는 걸 즐기지 않으니까 거의 가뭄에 콩 나듯 보는 편이지.


근데 어제 아시안 컵 필리핀과의 게임은 정말 우리나라의 축구 수준이 저 정도였나 할 정도로 한심해서 축구 팬으로서는 밤늦은 시간에 TV를 본 다는 자체가 아까울 정도였지.


우리야 축구 전문가는 아니지만 요즘은 케이블 티브가 보편화돼서 외국 유명 팀 유명 선수들이 뛰는 경기를 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잖아. 그래서 일반인들도 축구를 보는 안목은 웬만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봐. 그러니 자연 톱 플레이어들이 뛰는 장면과 결정적 순간에 볼을 처리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감탄을 연발하게 되지. 그런 게임들을 보다가 국내 팀들의 플레이를 보면 정말 답답해하게 되지.


어제도 내가 게임을 보다가 연신 저런 저런 아니 저렇게 실수를 하다니. 아니 저러고도 대표 선수란 말이야 하고 흥분 하곤 했지. 마침 당신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나 혼자 큰 소리를 낼 수는 없어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었지만. 아무튼 그러면서 보다가 후반전 시작하고 중반쯤에 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티브이를 꺼버리고 말았어. 아침에 일어나서 결과를 보니 그러길 잘 했다는 생각이야. 왜냐하면 그 후 득점은 없이 1:0으로 우리가 이긴 상태로 변함없이 끝났더라고.


축구는 무엇보다도 기본기가 철저해야 한다고 생각해. 당신한테는 맨날 티브이를 보면서 흥분하는 나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하는 말이 있지. 운칠기삼이라고 말이야. 내가 아니 저런 저런 야 패스 좀 잘해라. 뽈 컨트롤 좀 제대로 해라. 슈팅을 그렇게 밖에 못하냐. 에이 골키퍼 아니 그걸 못 막냐 하면서 중얼거리면 당신은 옆에서 운칠기삼이야 저 선수들은 얼마나 열심히 뛰는 데 골키퍼가 조금만 옆으로 이동했으면 막을 수 있었는데 놓쳤네 하곤 했지. 물론 당신은 그냥 하는 말은 아니란 걸 잘 알지. 내가 너무 흥분하는 것 같으니까 옆에서 보다 못해 하는 소리라는 걸 말이야. 사실 어쩌다 야구라도 보면서 저 선수 미국 MLB로 가더니 언제 왔지? 하고 혼잣말하고 있으면 얼마 전에 국내 모모 팀으로 왔잖아 하는 둥 당신이 별로 스포츠에 관심 없는 줄 알았더니 나보다 더 세세하게 알고 있을 때 나를 놀래키곤 했지. 그뿐인가 어! 오프사이드 아냐? 하면서 내가 소리를 치면 당신이 옆에서 저 선수는 수비수보다 뒤에 있다가 볼을 차는 순간 뛰어나간 것이니까 오프사이드는 아니지 하는 평을 할 때 당신을 다시 보게 된단 말이야. 그러니 내가 축구는 기본기가 철저해야 한다고 하면 당신은 아니 프로 선수들이야 어렸을 때부터 축구공만 가지고 놀고 중 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대학이나 실업팀을 거쳐 대표 선수들이 되었을 텐데 기본기야 잘 되어있지 않겠어? 단지 선수들이 뛰다 보면 실수도 있는 것이지 그런 걸 그렇게 흥분하는 사람이 웃기는 거지하면서 깔깔 웃는 당신이니 그런 말하는 내가 멀쑥해지고 말곤 하지.


그래 국가의 이름을 걸고 열심히 뛰는 선수들에게 격려의 말은 못할망정 이렇게 잘 못하는 경우만 이야기하면 안 되겠지. 그러나 아까도 말했지만 말이야 이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팀들 유명한 선수들 경기 장면을 원하면 얼마든지 보면서 선수들 기량을 판단할 정도의 안목을 키웠거든. 그러니 우리 선수들도 인기나 몸값 이런 것에 신경 좀 덜 쓰고 자신들의 기량을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연마를 해야 할 것이야. 덧붙여서 우리는 이제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니라 세계화 국제화 시대에 살고 있으니 축구뿐만이 아니라 정치나 문화나 경제적인 면에서도 좀 깨어나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좀 더 깨어나야겠지만 말이야. 그렇다 해도 어제 필리핀과의 경기는 정말 한심스러웠어. ㅠㅠㅠ. 


손주 애들이 방학을 해서 우리는 더 바빠졌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

부산에서까지 방학 특강을 듣기 위해서 서울에 올라왔으니 집이 갑자기 북적대니까 사는 집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한동안은 바쁘게 생겼더군. 제일 힘들고 고생하는 사람은 당신인대 그래도 연신 무어가 그리 좋은지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는 모습을 보면 한편 고맙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해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아.

그런대 아직 초등학생들을 이렇게 학원이다 특강이다 뭐다 하면서 쉴 시간도 없이 몰아치는 것은 좀 심한 거 같지 않아?

친 손주야말로 이건  방학을 하면 애가 더 바쁘게 이 학원 저 학원 다니는 모습을 보면 뭐 이거 고등학교 학생인가 할 정도란 말이지. 물론 지 부모가 맞벌이하다 보니 애가 집에서 있으면 할머니인 당신이 더 힘들까 봐 학원으로 돌리는 건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특강까지 신청을 해서 애가 잠시도 쉬지 못하고 뛰어다닌 걸 보면 옆에서 보기에 측은하단 말이지. 더구나 외손주 아이까지 뭔 방학 특강이라고 해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서 2주 동안이나 공부하게 만드는 데는 참 어이가 없기도 해.

나는 옆에 있다가 방학 전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픽업해주느라고  운전을 했었는데 덩달아 바빠져서 방학 동안에는 매일을 픽업해 주기 위해서 운전을 해야 하니 나도 사실 힘들어졌다는 것이지.

어차피 교육 문제는 당신이 학교 선생을 한 경험을 살려서 열심히 잘 이끌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과연 한참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을 이렇게 몰아쳐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전에 초등학교 애들을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내 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남의 이야기로 먼 산 바라보듯 했는데 막상 내가 그런 상황이 되고 보니 할 말을 잃었다고나 할까.

교육은 자연을 벗 삼아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는 루소의 에밀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또 그렇게 키울 수도 없는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조금은 좀 아이들답게 아이들을 위한 그리고 아이들 그 자체로서 자랄도 록 하는 교육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오늘이었지.

그런데 친손주 외손주 두 아이가 함께 어울려 지내는 요즘 확실히 다른 행동거지를 보는 재미가 무척 쏠쏠하더군. 두 아이가 생년월일로 볼 때는 일 년 반 정도 차이가 나지만 좀 더 큰 친손주 녀석은 2학년으로서 확실히 점잖고 동생을 다독거릴 줄 아는 여유가 있어 보이고 외국에서 5년을 지내다 온 외손주 녀석은 한국에서 일학년으로 편입해서는 환경 적응과 영어권에서 생활한 터라 한국어가 말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쓰기에 곤란을 겪을까 걱정했었는데 빠른 시간 만에 습득하는 것을 보고 대견스러웠는데 행동도 아주 밝고 춤도 잘 추고 말도 잘하면서 잘 어울리는 것이 친손주 녀석 하나만 보다가 둘을 같이 보니 재미가 더 하더군. 당신이 그래서 그렇게 미소가 입에서 떠나지 않는 거 아닐까?

시쳇말로 손주 아이들은 오면 반갑고 귀엽고 즐겁지만 좀 지나면 언제 가나 빨리 안 가나 한다는데 글쎄 이제 며칠 지나면 그런 생각이 들까? 아직은 좋기만 한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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