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즐거운 세상 사는 이야기, 세상 사 모두가 즐겁지 아니한가?
랑세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0] 기항지 방콕 관광

2019. 2. 6. 18:46 | Posted by 랑세

크루즈에서 11시 30분에 하선을 해서 방콕 관광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아침을 좀 일찍 먹고도 또 11시경에 점심을 먹느라고 일어나서부터 부산을 떨었다. 먹는 것이 지천에 있지만 일단 크루즈를 떠나면 그때부터는 식사 비용이 추가되니까 한 끼라도 크루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가이드 말에 따라 열심히 식사를 챙겨 먹었다.

방콕 관광은 약 20여 년 전에 퇴직하고 처음 떠난 여행으로 다녀온 곳이지만 새로운 기분을 느끼면서 출발했다. 방콕도 서울 못지않게 미세먼지가 심했다. 심한 정도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았다. 더구나 하루 종일 어두운 하늘은 관광의 기분을 무겁게 했다. 더구나 교통체증은 얼마나 심한지 크루즈 터미널에서 방콕 시내까지 도착하는데 여행사에서 예상했던 시간보다 무려 1시간 반 정도나 늦게 도착했다.

방콕은 도시의 크기가 서울보다 더 크다는 사실에 놀랐다. 거의 2배 정도가 더 크다고 한다. 인구는 서울 인구와 비슷한데 문제는 관광객이 많아서 유동인구가 피크 시에는 거의 2천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처음 관광지는 왕궁이었다. 말이 왕국이지 거의 다 불교 관련 시설들이었다. 에메랄드 사원이나 각종 불교 사원들 그리고 일부 현대적 건물들과 어울려 있는 왕궁은 거의 1700년 전에 건립되었다는 말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일부 건물들에는 황금으로 도금되어 화려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고 규모도 어마어마했다. 고대에 그런 건축물을 짓고 지금까지 유지 관리되어 있음에 또한 한번 놀랬다.

그다음에는 수상가옥들을 둘러보았다. 배를 타고 쟈오프라야 강을 따라 둘러보는데 수상버스 수상 택시 등을 타고 내리는 곳이 군데군데 있었다. 수상가옥들은 너무 낡고 초라했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왕궁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바로 옆 강가에 그런 가옥이 있는 것을 보면서 극과 극을 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배는 우리의 한강에 떠있는 작은 유람선과 같았는데 한 사, 오십 명을 태울 수 있는 규모에 비해서 타고 내리는 것부터 위험하기 짝이 없이 운영되는 것을 보면서 안전 불감증이 여기도 있는 듯했다.

약 20년 전에 왔을 때 보다 방콕시의 모양새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고층 빌딩들이 즐비하게 들어섰고 지하철역도 간간이 보이지만 노선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대 가이드 말에 따르면 625 동란 때 태국이 참전 16개국 중 하나라면서 전쟁 직후 우리나라 식량 사정이 좋지 않을 때 태국에서 안남미를 제공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안남미가 알랑미라고 발음되었는데 그때 그 쌀이 길쭉하고 밥을 지어놓고 후 불면 날아갈 정도로 찰기가 없는 쌀을 알랑미라고 지금도 부르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때만 해도 태국이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살기 좋았지만 지금은 역전이 되어 우리가 훨씬 잘 살고 있다고 하면서 지금도 태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을 좋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어려웠던 그때를 생각해서 양국의 교류가 잘 이루어지면 좋겠다고 한다.

관광을 끝내고 유명하다는 태국 마사지를 받았다. 전신 마사지인데 2시간이나 소요된다. 아주 천천히 몸 구석구석을 마사지해 주는데 나는 원래 마시지 체질이 아닌지 받고 나서도 별 느낌이 없었다. 일행 중 어떤 사람은 일어나서 걷는데 불편을 느끼고 계단을 내려갈 때는 난간을 붙잡고 천천히 내려올 정도였다. 그러면서 시원하다고는 하는데 나는 별로 일어나서도 그렇고 느낌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 모두 좋았다고 하는데 나만 유별 떨 수도 없기에 마사지 받으니까 어떠신가요? 하기에 그냥 몸이 개운해진 것 같다고 같이 너스레를 떨어 주었다.

밤늦은 시간이라서 그런지 크루즈 터미널로 돌아오는 길은 막히지 않고 제시간에 도착했다. 멀리서 크루즈 배를 보자 일행 중 한 사람이 '어! 집에 오니까 좋네' 해서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여행객에게는 잠을 청하는 곳이 집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어마어마하게 크기 때문에 더 편안한 안정감들을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늘도 감사!!!


[29] 하루 종일 항해

2019. 2. 6. 18:33 | Posted by 랑세

서울의 하늘에서 별을 못 보던 갈증을 오늘 저녁 크루즈 선상에서 마음껏 별을 보며 풀었다. 서울의 하늘과 크루즈에서 보는 하늘이 틀리단 말인가? 서울의 하늘은 별들을 어디다 감추고 있었을까?

정호승 시인은 낮에 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별들이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시를 읊고 있다. 별들은 서울의 하늘이나 지금 이곳 하늘에서나 똑같이 떠 있다. 우리의 마음이 어둠으로 덮여 있어서 별들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 터이고 답답한 서울의 하늘에도 떠있는 별들을 보지 못하는 것은 인간들의 무지로 인해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잠시 어딘가로 피신해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루 종일을 크루즈 선상에서 보낸다는 것은 지루하고 답답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곤 했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저런 공연에다 이곳저곳 아이쇼핑에다 끼니 때마다 펼쳐져 있는 진수성찬을 마음대로 먹으면서 다니다 보니 오히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분주하게 다녔다. 그중 오늘은 저녁에 메인쇼가 있었는데 가수들과 댄서들이 노래와 춤으로 한 시간여를 공연하는데 노래는 주로 재즈와 팝송 그리고 인도계들이 많이 탔는지 마지막에는 인도풍의 노래를 불렀다. 팝송은 60년대와 7,80년대 노래가 주였고 댄스들의 춤들은 파리의 무랑루즈 스타일과 미국의 전형적인 스타일이었지만 무대 장식이나 특히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한 현대적 감각의 화려한 무대였다. 어찌 보면 우리의 7,80년대의 쇼무대를 보는 듯한 댄서들의 춤사위가 옛 생각을 불러일으켰지만 무대 시설의 화려함은 그런 생각을 할 여유를 주지 않고 60여 분을 쉬지 않고 공연이 이어지는데 탄성과 박수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크루즈 여행은 자본주의의 극치를 보여 주는 듯하다. 우선 물량 면에서 모든 것이 풍부하다. 넘쳐나는 음식과 넒은 통로와 군데군데 산재해 있는 공연장들은 참으로 호화판이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서 보면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섞여서 각국의 취향에 맞춰서 음식을 먹는데 우리네는 아직도 몸에 밴 절약 정신으로는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음식을 남기고들 있었다. '적당하게'라는 말이 이곳에서는 무의미한 말이 되고 만다. 워낙 종업원들이 많고 교육이 철두철미하게 이뤄져서 그런지 누군가 어질러 놓으면 즉시 치워놓는다. 아무 데나 커피잔이나 물컵을 마시다 놓으면 통로이건 통로 옆 테이블이나 심지어 공연장에 입장할 때 서비스로 주는 샴페인 잔을 마시고는 그냥 의자 밑에 두고들 나온다. 샴페인 잔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은 우리 일행들뿐이었다. 나오면서 직원들에게 주었더니 함박웃음으로 받는다. 그만큼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이유라서 즐겁게 받아든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도무지 서비스를 하면서 언성을 높이거나 얼굴 표정을 찌푸리거나 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본적도 없을뿐더러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야말로 지상낙원이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은 같이 못 온 집에 있는 사람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하면서 이런 즐거움을 같이 나누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오늘도 감사!!!


싱가포르는 중국인이 75%, 말레이인이 14%, 나머지 인도인, 영국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주택가에도 절인지 사원인지가 있다. 싱가포르의 거리는 국토 면적에 비해서 넒은 도로가 인상적이다. 또한 고층 건물들이 여기저기 공사 중이고 아파트도 눈에 띄게 많아 보이는 것이 인상적이다.

아침에 호텔에서 조식을 먹었는데 아이비스 스타일 호텔은 참 조악스러웠다. 예상외로 인도인이 많아서 레스토랑이라고는 좁고 테이블도 몇 개 없는데 인도 여자들은 몸집이 굉장히 커서 비좁은 곳을 오고 가는데 부딪치게 돼서 매우 불편했다. 인도식 카레도 좀 먹어보고 빵 몇 개를 먹고 커피를 마셨는데 이상야릇한 냄새가 좀 거슬려서 마시다 말았다.

아침 조식 후 싱가포르를 떠나서 크루즈 터미널로 이동, 승선을  했다. 좀 일찍 도착해서 그런지 예상보다 출국 심사가 빠르게 이뤄져서 쉽게 승선했다. 로얄 캐리비안 보이저호는 13만 톤 급으로 탑승인원이 4000명 정도에 승무원이 1200명 정도 된다. 가장 기본적인 안전교육을 전 탑승객을 참석시켜서 훈련을 하고는 바로 출항을 했다.

보이저호의 규모는 대략적으로 길이가 311m, 폭이 48m로서 약 13만 톤 급으로 그 크기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은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전혀 붐비지를 않았고 워낙 넓다 보니 배의 시설들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이용을 못하는 경우도 있고 간혹 길을 잃어서 헤매는 경우가 있다면서 가이드가 인솔해서 ship tour를 별도로 했다. 이제 서너 번 경험을 하니까 그래도 대충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겠지만 이용 방법 등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는 바람에 이번 여행은 알뜰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승선하자마자 점심을 뷔페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먹는다는 것이 그만 잘 차려진 뷔페 음식들을 보고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과식을 했다. 역시 크루즈는 먹는 것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풍부하다. 가이드가 하는 말이 크루즈 여행을 갔다 와서 무엇이 가장 인상에 남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음식이었다고 하더란다.

오후에는 주 통로인 5층 데크에서 퍼레이드가 펼쳐졌고 우리는 칵테일을 한잔 마시며 구경했다. 오션스프레이라는 이름의 칵테일은 난생처음 마셔 보았는데 레몬 맛이 나면서 조금 씁쓸했는데 첫 모금에 아! 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미감을 자극했다. 신선했다.

저녁 식사는 정찬으로 prime rips에 샐러드와 후식으로 딸기 샬롯이란 음식을 먹었는데 점심에 과식을 해서 그런지 음식을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처음 미국에서 카리브해 일주 크루즈 때 일행들이 돌아가면서 와인을 주문했던 기억을 되살려 오늘은 우리가 와인을 주문해 이번 크루즈 여행의 재미있게 즐기자고 건배를 했다.

저녁 식사 후 아이스 쇼를 관람했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아이스쇼는 관람객을 함께 일사불란하게 손뼉을 쳐대게 하는 마법을 부리면서 환호성 속에서 진행됐다. 언제 보아도 화려하고 즐거 흥을 돋우는 쇼였다.

아 이런 황홀한 여행을 즐기는 행운에 감사한 마음이다. 오늘도 감사!


오늘부터 동남아 크루즈 여행 시작이다.

여행은 언제나 설레임이다. 여행을 가려는 날짜를 정하고 가려는 곳, 그리고 어떻게 갈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동안 설레임으로 마음이 둥둥 거린다. 마치 '그곳에 도착한 듯' 설레임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동안이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까 한다. 사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떠나기 전의 설레임 그 자체가 여행의 전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인천공항을 출발,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해서 곧바로 IBIS styiles 호텔에 짐을 풀었다. 년 전에 대만에서 일본을 왕복하는 크루즈 애행을 했던 바다투어를 통해서 이번에는 동남아 크루즈에 왔다.

크루즈 여행은 십 년 전에 미국 뉴욕에서 출발하는 카리브해 일주 여행 이후 네 번째다. 나이 든 후에 패키지여행은 관광을 주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일정에 쫓기 듯 바쁘게 다녀야 하고 여기저기 관광을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무척 피곤한 여행이기 때문에 힘들다. 하지만 크루즈 여행은 관광이 목적이라기 보다 쉬면서 다니는 여행이다 보니 자연 끌리게 된다.

싱가포르는 처음인데 창이 공항 중에 4터미널이라는데 준공된 지 6개월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공항의 규모는 인천공항에 결코 뒤지 않는 것 같다. 특이한 점은 입국 수속을 받고 수하물을 찾아서 공항을 나오는데 수속이 간편해서 시간이 얼마 걸리 않았다. 다만 한국에서 출발할 때 가이드가 주의사항을 말하면서 싱가포르 입국 심사가 까다롭다고 심하게 이야기해서 겁먹었은데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다. 특히 담배는 일체 가지고 들어갈 수 없고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디스 안내 방속에서도 담배뿐만이 아니라 껌도 안된다고 하는 등 요란스러웠지만 실제 입국 심사에서는 전혀 그런 체크는 없었다. 아마 잘못돼서 체크가 될 때는 엄청난 범칙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미리 조심을 시키기 위해서 그런 엄포를 놓았던 것이 아닐까 한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버스로 이동하면서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나라 크기는 한국의 서울에다가 여의도 정도 더 보탠 정도이고 인구는 약 5백7십만 정도라고 한다. 물가는 세계 1위라고 할 만큼 비싼데 일반적으로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것들 즉 주류나 담뱃값은 한국의 거의 3배 정도이지만 국민에게 필요한 물품들 즉 일상 필수품은 절대 비싸지 않다고 한다. 거의 모든 것이 수입되고 있는데 자동차를 예를 들어서 현대의 소나타가 약 1억 1천만 원 정도 한다고 한다. 땅덩어리가 작기 때문에 집값도 비싼 편인데 대신 일반 서민은 싱가포르 국민일 경우에는 결혼하게 되면 ‘정부 주택'이라는 우리의 임대 주택 같은 것을 신청을 받아 주는 데 가격은 약 3,4억 정도이고 그것을 평생을 통해서 무이자로 원금만 갚아나간다고 한다. 그래서 싱가포르의 거지(?)도 집은 있다고 한다. 가이드가 호주에서 살다 싱가포르에 왔을 때 우스갯소리로 호주에서는 거지(?)도 통장이 있다고 했더니 싱가포르에서는 거지도 집이 있다고 해서 웃었단다.

싱가포르의 국민소득은 5만 3천 불 정도로서 상당히 높은 편인데 그래서 주변 국가들 필리핀이나 미얀마 태국 등에서 저임금의 사람들을 가정부로 쓰기 때문에 여자들은 집에서 음식을 손수 해먹지 않는 데다가 편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여자들 살기에는 아주 좋은 나라라고 한다. 요즘은 지난번 미국과 북한 회담이 있어서 그 여파로 한국 관광 바람이 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다 한다. 우리는 그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호텔에 집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니 겉으로 보기에는 싱가포르가 전혀 그 정도로 잘 사는 나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면 밤에 도착해서 아직 정확하게 보지를 못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싱가포르를 떠나 크루즈 선인 로얄 캐리비안 보이저호에 승선, 하루 종일 항해해서 태국 방콕으로 간다. 실질적 크루즈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제저녁 늦은 시간에 아시안컵 축구를 보다가 화가 나다가 나중에는 짜증이 났다.

이게 뭔가. 적어도 우리나라 선수들 중 몇몇은 유럽에서 이름있는 축구 클럽에서 활동 중이고 그중 한 선수는 세계에서 손꼽는 유명 선수 대열에 끼어있는 우리나라 대표팀인데 말이다.

우리나라 FIFA 랭킹은 53위이고 카타르는 93위이다. 요즘 FIFA 랭킹은 순위가 무색할 정도로 하위 팀들이 상위 팀들과 호각을 이룰 정도로 실력들이 많이 향상되었다. 바로 엊그제 시합한 일본과 베트남의 경우만 봐도 일본은 50위이고 베트남은 100위 팀이건만 일본이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게 시합을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정말 너무 했다.

축구는 개인기와 조직력의 결합체다. 적어도 대표팀의 선수들은 개인기 면에서는 기본적으로 갈고닦은 실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 개인기는 무엇을 요구하나? 우선 볼 컨트롤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 롱패스든 짧은 거리 패스든 패스된 볼을 잘 키핑(keeping) 해서 그다음 단계로 원활히 넘겨 주어야 한다. 패스만 제대로 된다면 적어도 안정된 자세라고 볼 수 있겠다. 다음은 안목을 넓혀야 한다. 자기에게 오는 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누가 볼을 갖고 있든 저 볼이 그다음 어디로 갈 것인지 그리고 내게 볼이 올 경우 온 다음에 바로 어디로 볼을 넘겨 줄지를 항시 주변을 주시하고 사전에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도무지 어떤 때는 저 선수들이 대표 선수 맞아? 하는 한탄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정말 짜증이 난다.

그렇게 개인기가 마련된 선수들끼리 훈련을 해서 조직력을 키워야 한다. 조직력은 서로 눈빛만 봐도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알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대표팀 선수로 오랫동안 훈련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서로의 호흡을 알아가면서 조직력이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엊그제 일본 선수들도 베트남과 시합에서 아주 졸전을 했다. 하지만 그래도 패스 하나만큼은 활발하고 부러울 정도로 정확성이 있었다. 그런 기본기만큼은 부러웠다. 더구나 서로의 조직력은 탄탄했다. 다만 일본팀은 베트남을 너무 가볍게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카타르 팀은 개인기에서는 조금 괜찮은 듯하나 조직력에서는 한참 먼 팀이 아닌가 한다. 그런대도 카타르와의 시합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은 패스도 엉성했다. 오히려 한 수 아래인 카타르 선수들은 어쩌다 볼을 잡았을 경우 빠르고 강한 패스를 정확하게 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고 그중 하나가 골과 연결된 것이다.

아! 우승을 바라보던 우리나라 팀의 좌절은 또한 축구팬들의 좌절이다. 앞으로의 준결승과 결승전을 기대하던 축구팬들의 좌절감 또한 크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물은 엎질러진 것을. 어찌했든 아쉽지만 우리 선수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그래서 '축구 공은 둥글다'라고 하는가 보다. 우승 후보가 4강에도 못 들다니 말이다.


[25] 도서관 이야기

2019. 1. 25. 19:00 | Posted by 랑세

국립 중앙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한 지도 5년째 되고 있다. 10여 년을 잠시 서울 근교 지방에서 살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와 딱히 할 일도 없고 마땅히 나갈만한 곳도 없어 집에서 삼식이(?) 노릇을 하는 것은 내 성격상 맞지 않고 해서 생각해 낸 것이 도서관이나 나갈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5년이나 되었다.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할 이야기가 많다. 우선 초등학교 5학년 시절에 나는 도서관 반원에 가입했다. 담임 선생이 어느 날 도서 반원을 모집하는데 지원할 사람 손들라고 해서 나는 손을 번쩍 들고 앞으로 나갔다. 이상하게 다른 애들은 관심이 없는 것인지 왜 그런 것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혼자 2층 계단실 옆 교실로 가서 도서반을 지도하는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할 일에 대해 말씀을 들었다. 그래 바야 책들을 서가에 정리하는 정도의 일이었다. 그때 그 많은 책들에 흥분했던 기억이 있다. 어린이용 도서는 당시에는 보기에 참 어려운 실정이었다. 집에서는 간혹 만화책 정도나 접할 수 있었고 어린이 문고나 백과사전류 같은 것은 일반 가정에서는 거의 볼 수 없을 때였으니까 말이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도서반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나는 책들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 좋았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규모도 훨씬 크고 전담 사서 선생님도 있었다. 당시 기억에 남는 것 하나가 있다. 어느 땐가 방과 후 책 정리 등 일들이 끝나고 시간이 나서 이리저리 책들을 살펴보면서 읽을 책을 찾다가 제목에 끌려서 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 내용이 읽기 어려웠다.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고 그렇다고 한번 잡은 책을 집어던지기도 뭣하고 해서 끙끙거리고 있는데 상급생이 지나가다가 보고는 이 책은 아직 네 수준에는 안 맞아 그러니 다른 책을 보는 게 좋을 텐데? 한다. 그 소리에 얼른 제자리에 꽂아 놓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방과 후에는 책 속에서 지내길 좋아했다.

이제 나이 들어 도서관엘 다니면서도 어린 시절의 도서 반원으로서 느꼈던 책들 속에서의 황홀경은 변함이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도서관이란 '저쪽' 세계로 통하는 문을 찾아내는 장소인 셈이다.

문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는 수수께끼가 있고, 공포가 있고, 기쁨이 있다.

은유의 통로가 있고, 상징의 창이 있고, 우의(寓意)의 은밀한 책장이 있다.

-잡문집 중에서

라고 하면서 소설을 통해 도서관이란 것이 더없이 소중한 의미를 가지는 장소라고 묘사하곤 했다 한다.

나도 또한 도서관에 들어서는 순간 서가에 꽂혀있는 책들이 내뿜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가 나를 향해서 쏟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그 '저쪽' 세계로 통하는 문들, 상상의 세계를 한 발자국씩 내딛는 기쁨을 만끽하는 생활에 감사할 뿐이다. 오늘도 감사!


이전 1 2 3 4 5 ···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