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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출처 : [애송시 100편-제39편] 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21/2008022100290.html
정끝별·시인
입력 : 2008.02.21 02:11 / 수정 : 2008.02.21 09:40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이 잠거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도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께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1947년> 

▲ 일러스트=권신아
"거리의 뒷골목에서 만나거든/먹었느냐고 묻지 말라/굶었느냐곤 더욱 묻지 말라"(시 '나를 만나거든')던 시인 이용악(1914~1971)! 그는 한반도의 최북단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났다. '두만강 너 우리의 강'을 건너 할아버지는 소금을 밀수입했고 친척들은 그 강을 건너 아라사(러시아) 연해주 등지로 이민을 갔다. 그 두만강을 건너 밀무역 행상 중 아버지는 객사하였으며, 홀로 된 어머니는 국숫집을 하며 어린 자식들을 키웠다. 시인 또한 서울에서 동경에서 품팔이 노동을 하며 고학했다. 이야기성과 체험의 구체성이 두드러진 그의 시들을 읽는 일은 일제강점기의 불행한 개인사, 가족사, 그리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읽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북간도 어느 술막에서 함경도 사내와 전라도 가시내가 만났다. 사내는 언 발로 눈보라를 뚫고 두만강을 건너왔으며 날이 밝으면 다시 흔적도 없이 떠나야 한다. 가시내는 석 달 전에 북으로 달리는 '불술기(기차)' 속에서 치마를 뒤집어쓴 채 이틀을 울며 두만강을 건너 이곳으로 팔려왔다. 그런 두 남녀가 국경 너머에서 만나 겨울밤 내 지나온 내력을 이야기하며 술잔을 주고받고 있다.

그 밤 내 사내가 '가시내야' '가시내야'라고 부를 때, 그것도 함경도 사내가 '전라도 가시내야'라고 부를 때, 그 전라도 가시내는 한없이 차고 한없이 차진 느낌이다. 고향을 떠나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고 울었던 가시내, 지금은 남실남실 술을 치는 가시내. 때로 싸늘한 웃음을 보조개를 소리 없이 새기는 가시내, 까무스레한 얼굴에 눈이 바다처럼 푸른 가시내, 간간이 전라도 사투리가 섞이는 가시내…. 이 함경도 사내처럼 나는, 그 전라도 가시내를 만난 것만 같다. 전라도 개펄의 바지락 조개 같고 세발낙지 같고 때로 꿈꿈한 홍어 같기도 했으리라.

그 밤 내내 함경도 사내가 피워 올리는 북쪽 눈포래 냄새와, 전라도 가시내가 피워 올리는 남쪽 바다 냄새에 북간도 술막이 흥성했겠다. 그 술막의 술독 바닥났겠다. 눈에 선한, '흉참한' 시대를 살았던 그 전라도 가시내. "너의 노래가 어부의 자장가처럼 애조롭다/너는 어느 흉작촌(凶作村)이 보낸 어린 희생자냐"(제비 같은 소녀야-강 건너 주막에서)!

 원문출처 : [애송시 100편-제38편] 긍정적인 밥 - 함민복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20/2008022000023.html
문태준·시인
입력 : 2008.02.20 00:16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1996년> 

▲ 러스트=잠산
"아무리 하찮게 산// 사람의 생(生)과 견주어 보아도// 시(詩)는 삶의 사족(蛇足)에 불과"('詩')하지만 시인은 시를 써서 세상의 돈을 쥔다. 끙끙대고 밤을 새우며 쓴 노력에 비하면 원고료는 박하고, 몇 년 만에 펴내고 받는 인세로 꾸리는 생활은 기궁하다.

그러나 이 가난한 시인은 원고료와 인세를 교환하면 쌀이 두 말, 국밥이 한 그릇,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이나 되니 든 공에 비해 너무 많은 게 아닌가라고 묻는다. 쌀이 두 말이 되기까지의 노동, 한 그릇의 국밥이 되기까지의 노동, 굵은 소금 한 됫박이 되기까지의 노동에 비하면 내 노동의 대가는 얼마나 고맙고 큰 것인가 라고 말한다. 땡볕 속에서 몸으로 얻어낸 그것들에 비할진대. 이 세상 정직한 사람들의 숭고한 노동에 비할진대.

함민복(46) 시인의 초기 시는 거대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공포를 노래했다. "이 시대에는 왜 사연은 없고/ 납부통지서만 날아오는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이 아닌가"('자본주의의 사연')라고 노래했고, 서울을 문명을 주사하는 '백신의 도시'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1996년 그는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인, 마당에 고욤나무가 서 있는 강화도 동막리 폐가 한 채에 홀로 살림을 부렸다. 동네 형님 고기잡이배를 따라다니며 망둥이, 숭어, 농어를 잡고, 이제는 뻘낙지를 잡을 줄도 아는 어민후계자 시인이 되었다. 뻘에 말뚝을 박으려면 힘으로 내려 박는 것이 아니라 "뻘이 말뚝을 품어 제 몸으로 빨아들일 때까지/ 좌우로 또는 앞뒤로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뻘에 말뚝 박는 법')는 것도 배웠고, 그물 매는 것을 배우러 나갔다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경진 아빠 배 좀 신나게 몰아보지/ 먼지도 안 나는 길인데 뭐!"('승리호의 봄')라며 농담을 할 줄도 안다.

강화의 서해 갯바람과 갈매기와 뻘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의 시는 단단한 문명에 맞서는 '부드러움의 시학'으로 나아가면서 우리 시단에서는 한동안 드물었던 '섬시(詩)' 명편들을 낳고 있다. 강화도의 '물때달력'을 오늘도 들여다보고 있을 시인아.

 원문출처 : [애송시 100편-제37편]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 고은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19/2008021900217.html
정끝별·시인
입력 : 2008.02.19 01:55 / 수정 : 2008.02.20 11:40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으로 벋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 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文義)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주(註) : 문의(文義)-충북 청원군의 한 마을.


<1974년> 

▲ 일러스트 권신아
중학생 때 길에서 주운 한하운 시집을 읽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시인.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시인. 출가와 환속, 숱한 기행, 폐결핵, 자살시도, 군법회의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기도 한 반독재 민주화운동 등 열정적인 삶을 살아온 시인. 시, 소설, 평론, 평전, 번역, 수필 등 150여 권에 이르는 신화적 글쓰기로 유명한 시인. '젊은 시인이여 술을 마셔라'라고 일갈하는 말술의 시인. 격정적인 시낭송이 일품인 시인. 낭만적인 허무의식에서, 역사와 민중에 대한 첨예한 현실인식으로, 그리고 선적(禪的) 초월의식으로 시적 변모를 거듭해온 시인. 올해로 등단 반세기를 맞이하는 시인. 여러 의미로 고은(75) 시인은 '큰' 시인임에 분명하다.

이 시는 신동문 시인의 모친상을 조문하러 문의에 갔다가 쓴 시라고 알려져 있다. '문(文)'과 '의(義)'의 마을, 문사(文士) 혹은 지사(志士)들이 꿈꾸었을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지명이다(실제의 문의마을은 80년 대청댐 담수로 수몰되었으며 그 일부가 문의문화재단지에 복원되었다). 문의마을에 눈은 만났다가 갈라지기를 거듭하는 삶과 죽음, 산과 들, 마을과 길의 경계를 덮으며 내린다. 경계를 덮으며 내리는 눈은 온 세상을 낮게 그리고 가깝게 만들고, 적막하게 그리고 서로를 껴안아주고 받아줄 듯 내린다. 시인에게 그 눈은 죽음처럼 내리는 것이다. 우리 삶 속의 죽음처럼.

그의 다른 시 "싸락눈이 내려서/ 돌아다보면 여기저기 저승"('작은 노래'), "쌓이는 눈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눈길')라는 시에서도 눈은 '대지(大地)의 고백(告白)'이나 '위대한 적막(寂寞)'처럼 내린다. 한 평자는 그러한 눈을 '아름다운 허무'라고도 했다. 그러나 눈은 금세 내리고 금세 녹아버리듯, 우리가 삶에서 죽음의 의미를 깨닫기란 높고 먼 일이다. 상여(喪輿)의 길처럼, 마을에서 산에 이르는 길은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겨울 문의에 가서 시인이 본 것은 그 길이 '가까스로 만난'다는 것이고, 너무 가깝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덮으며, 가깝게 낮게 내리는 눈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