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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볼만한 영화 없어?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겨울 하늘은 차갑게 파랬다.

이제 설날도 지났고 낼 모레면 입춘이고 방에만 있기에는 이 시골구석이 슬슬 갑갑해지는 겨울의 막바지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영화제목 하나가 눈에 띈다.

神과 人間

이거 어떨까? 당연히 아내는 제목에서 풍기는 뉴앙스를 느끼고는 어 괜찮겠는데 좋아요

그래서 본 영화다.

 

 

알제리 산골 마을의 수도원, 그리고 평수사인 의사 뤽을 포함해서 7명의 프랑스인 수도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도원 하면 고풍스럽고 중세적인 분위기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 영화는 시대적으로 현대의 시대 상황이다.

1996년에 발생한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 한 것으로 어찌 보면 다큐멘터리를 보는가? 하는 정도로 사실적이다.

수도사들은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율법에 따라 한곳에 정착하여 기도와 독서, 자급자족을 위한 노동 등을 실천하며 이슬람을 믿는 마을 사람들과 평화롭게 산다.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장면 장면에 몰입하게 하는 수도사들의 경건한 걸음걸이, 기도하고 묵상하고 독서하는 자세 하나하나에서 그리고 때마다 울려 퍼지는 그레고리안 성가와 수도원의 분위기들.

 

 

그런 반복적 일상에 약간 지루함을 느낄 만 할 때 서서히 무장한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이 등장하면서 긴박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서도 사랑이 무어냐고 묻는 마을처녀의 질문에 다정하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의사인 뤽의 모습이 참으로 평화스럽게 보인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알제리 정부군과의 정치적 소용돌이가 드디어는 수도사들에게 생명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수도원을 떠나라는 알제리 정부군의 통보와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의 수도원 침범으로 점점 위기는 고조되면서 절은 수도원장 크리스티앙은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고뇌하며 神을 향해 기도하며 응답을 갈구하면서 몸부림치지만 응답은 없고..

삶과 죽음(수도원에 남느냐 떠나느냐) 사이에서 수도사들의 고뇌와 번민이 그레고리안 성가와 함께 너무 리얼하게 다가왔다.

의사 뤽은 나이도 많고 평생 의사로서의 직분상 죽음의 길(남는 다는 것)을 선택하면서 나는 자유인이야.라 하고 다른 수도사들도 고뇌 끝에 남기로 결정 한 후 갖는 최후의 만찬과 같은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그렇게 상황에 잘 어울리는 곡일 줄은 미쳐 몰랐다.

 

 

아니 그 순간에 백조의 호수라니……”

? 감동적이지 않았어?

아니 그 곡은 왈츠 춤곡 아닌가? 그 순간에 춤곡은 좀 그렇지 않아?

내 무식이 탄로나는 순간이다. 아내는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왈츠는 4분의 3박자이고 이건 4분의 4박자이고 발레로 자주 무대에 올려지잖아.

! 이런 처참함이란.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순 없잖아 까칠하게 덤벼본다.

그래? 박자를 잘 아는군. 그럼 어떤 음악을 듣고 4분의 3박자와 8분의 6박자, 그리고 4분의 2박자와 4분의 4박자인지를 구분할 수도 있겠네.

아내는 한심하다는 듯 외면한 채 이제 막 어두워져 가는 겨울의 초저녁 서울의 거리로 눈길을 돌린다.

숭고하고 장엄하고 감동적인 영화를 본 후 공연히 분위기를 흐릴 필요는 없겠지……

왜 사는가 보다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우리는 말없이 모처럼의 서울나들이 겸 영화감상 뒤풀이를 위해 그리고 신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자각을 위하자는 나의 거창한 제의에 대해 속셈을 빤히 다 안 다하는 표정이면서도 아내는 말없이 광장 시장 안의 빈대떡과 막걸리 한잔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본문스크랩]    [주간조선]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고영주 위원장 인터뷰    2011/08/28 11:27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lsc100/5800356 주소복사 트위터로 글 내보내기 페이스북으로 글 내보내기  원문출처 : [주간조선]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고영주 위원장 인터뷰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8/27/2011082700689.html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고영주 위원장 / 조선영상미디어 정복남 기자

“친북·반국가행위자 100명 행적 기록한 책 곧 출간
2차 200명 명단도 발표할 것”

한상대 검찰총장이 지난 8월 12일 종북좌익 척결을 3대 과제로 내걸었다. 공개법정에서 벌어진 ‘김정일 장군 만세’, 정계·노동계·학계에서 암약해온 왕재산 간첩단 사건 등으로 국민이 불안해 하는 상황에서 나온 소식이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위원장 고영주)는 2008년 6월 출범했다. 고영주 국가정상화추진위원장은 지난해 3월 친북·반국가행위자 100명을 발표했다. 오는 8월 말에는 친북·반국가행위자 100명의 구체적 행적을 담은 책이 출판된다. 고영주 위원장은 검사 출신으로 서울남부지검장을 지낸 바 있다. 지난 8월 17일 서울 수송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고 위원장을 만났다.

- 지난해 친북·반국가행위자 100명을 발표했는데, 그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생각하나.
“(좌파에) 경각심을 주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좌파들이 언동을 조심하고 자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기네 블로그 등에 올린 글을 삭제하는 것은 명단에 신경을 쓴다는 뜻으로 본다.”

- 명단을 발표하고 난 뒤 고 위원장은 위협이나 협박을 당하지 않았나.
“나를 비난하는 글은 굉장히 많았다. 정신 빠진 짓을 한다는 등 나를 욕했다. 민·형사상 대응까지 하겠다고 했다.”

- 실제로 민·형사상 고소를 당했나.
“아직까지 대응이 없었다. 명단만 발표하고 책이 나오지 않았다. 몇 사람에 대해서는 발표했지만 나머지는 발표하지 않았다. 책 속에 100명의 구체적 행적이 기록될 것이다.”

- 그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치명적이겠다.
“대한민국이 공산화되지 않는 한 이 책은 역사적으로 남게 될 것이다.”

- 친북·반국가행위자 100명의 행적을 담은 책은 언제 나오게 되나.
“가급적이면 8월 중에 출간하려고 한다. 작업은 다 되어 있다. 잘못하면 명예훼손이 될 수 있으니까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문체가 다르면 안되니까 최종 작업은 두 사람이 교대로 작업 중이다. 편집위원들이 생업이 있고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시간이 걸린다.”

- 2차 친북·반국가행위자 명단은 언제쯤 발표할 계획인가.
“1권이 나오는 대로 바로 200명의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면 1차, 2차 합해서 300명이 된다. 앞으로 계속 명단을 발표할 것이다.”

- 전직 대통령이 빠진 이유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일부러 뺀 것은 아니다. 원래 들어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생존해 있는 사람 중에서 선정하자는 게 첫 번째 기준이었다. 생존해 있고 사회적 영향력이 뚜렷한 사람을 대상으로 삼았다. 죽은 사람까지 대상에 포함시키면 박헌영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그러면 그 수가 너무 많아져 버린다.”

- 일부에서는 민노당 이정희 대표가 100명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보다 더 심한 사람이 있으니까 순서대로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기본적으로 뚜렷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발언과 행적의 정도가 아주 심한 사람을 우선 100명 선정했다.”

- 정치인 중 일부도 100명에 포함됐는데, 유권자들이 내년 총선에서 심판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기본적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경각심이 이완되어 있는 상태다. 이분들을 지지하는 사람이 이런 성향을 모르고 하는 게 아니라고 본다. 모르고 지지했다면 돌아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많다. 대학가에서 의식화교육을 한 지 30년이 넘었고, 전교조가 초·중생을 상대로 의식화한 지 20년이 넘었다. 또 좌파정권 10년을 겪지 않았나? 젊은이들 사고방식 자체가 선악 구별이 안되는 상태다. 천안함 폭침을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이 20%나 된다는 거 아닌가.”

- 공안검사로 활동하면서 1980년대 누구보다 종북좌파의 실상을 많이 목격했다고 들었다.
“나도 대학 시절 3선 개헌 반대 데모에 참여했다. 우리는 그때 순수하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자 한 시위였다. 1980년대 들어 방향이 바뀌었다. 군부정권에 대한 반감이 컸으나 학생들 힘으로 정권교체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안된다. 체제변혁에 의한 혁명을 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부분을 좌익들이 파고들었다. 그들이 공부한 게 대남전략 지침서인 ‘주체사상에 기초한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이론’이었다. 여기에 보니까 그 당시 김일성이 의식화교육을 시키라고 한 지시가 나와 있었다.”

- 실제로 386간첩단을 비롯해 간첩사건을 많이 다뤄보지 않았나.
“부림사건이 많이 알려져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사건을 변호하면서 인권·사회의식에 눈을 떴다고 했는데, 부림사건은 명백한 공산주의 운동이었다. 지금도 핵심 피의자가 내게 한 말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아니, 검사님은 역사의 발전 법칙도 모르십니까’라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공산주의 이론을 내게 전도하려고 했다. 그 피의자는 ‘인류 역사의 발전 법칙에 따라 한국이 곧 공산화가 된다’ ‘역사가 바뀌면 주역이 바뀐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한다’면서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 그 핵심 피의자는 누구인가.
“너무 오래돼서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를 안타깝게 보면서 말했던 것은 분명히 기억한다.”

- 부림사건 공판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공산주의라고 하면 법정에서 불리하게 되니까 민중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했다. 인민민주주의라고 하면 금방 공산주의라는 것을 알아차릴 테니까 민중민주주의라고 한 것이다. 내가 민중민주주의 개념에 대해 따로 공부해보니 민중민주주의는 공산주의 이론의 변종이었다. 민중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가짜 민주주의로 규정했다. 그래서 내가 민중민주주의자를 국보법 위반으로 인지 구속기소했다. 결국 유죄판결이 확정되었다. 그다음부터 민중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하지 못했다.”

- 지난 정부에서 부림사건은 대표적인 용공조작사건으로 규정됐고, 관련자들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 위원들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그들은 민중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운동도 민주화운동에 포함시켰다. 그 위원회가 한 일은 과거의 용공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바꿔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부산 인맥들이 대거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요직에 들어갔을 때 어땠나.
“그들 대부분은 부림사건 인맥들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민중민주주의 인맥이었다. 내가 볼 때는 정말 끔찍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 가서 연방제 합의하고 왔지…. 그때 나는 정말 초조했다.”

- 노무현 정부 때 유일한 비토(veto) 대상이라고 들었다.
“김대중 정부 때 공안사건 전문 검사들은 ‘구 공안’이라고 해서 배척되었다. 검사 중 제거대상 10명에 포함되었다. 검사장급이 7명, 비검사장급이 3명이었다. 결국 못 버티고 9명이 다 나갔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내가 유일한 비토 대상 검사가 되었다.”

- 지금은 실태가 어떤가.
“DJ 정부 들어서 공안 경험이 있는 사람을 ‘구 공안’이라고 낙인 찍었다. 사실상 공안검사는 굉장히 전문성이 필요한 것이다. 한총련이 뭔지를 몰라서 이적단체 취급을 못하지 않았나? 지금 공안검사는 선거관리나 하고 노동문제나 취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 종북좌파의 뿌리는 1980년대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일제강점기 때 항일운동의 한 방법으로 공산주의운동을 한 사람들이 있다. 광복 직전에 좌익 이념에 빠져 있던 지식인들이 있었다.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되자 이들 중 3분의 1은 월북했고, 3분의 1은 일본으로 도망갔고, 3분의 1은 대한민국에 잠복했다.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감도 (집안) 내력이 있는 것 같다. 군부정권이 들어서면서 핑곗거리가 생겼다. 혁명의 만조기가 되면서 공산주의 이념을 모르는 청년들이 거기에 많이 넘어갔다.”

-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유와 풍요를 만끽하며 자란 세대가 왜 공산주의 이념에 넘어간다고 보나.
“기성세대는 6·25를 통해 공산주의자들의 실체를 목격했다. 그래서 그들은 속아넘어가지 않는다. 그들은 공산주의 이론은 몰랐지만 공산주의의 실천과정을 직접 봤다. 공산주의 이론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실천이론은 선전이론과 다르다는 것을 못 봤다. 그런데 윤원구 교수가 발견해냈다. 공산주의 이념은 30분이면 완전히 세뇌시킨다는 것 아닌가?”

- 1980년대 학생 운동권 내 종북세력은 어떤 변화과정을 거쳤나.
“처음에는 1980년대 초 학생들끼리 공산주의 혁명론을 공부했다. 그래서 서울대 같은 대학이 헤게모니를 쥐었다. 1985년이 되면 라디오로 북한의 단파방송을 들어 북한의 지시사항을 그대로 따라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학생운동의 헤게모니가 바뀌게 된다. 이론은 저쪽에서 나오니까 행동력이 더 중시된 것이다. 좌파 학생운동이 서울대에서 한양대로 옮겨가고 다시 조선대로 옮겨간 배경이다. 그게 NL계 아닌가? NL계나 PD계가 모두 대한민국을 전복하자는 것이다.”

- 동국대 강정구 교수 같은 사람은 어떤 부류에 속하나.
“우리나라에 좌익 잠복세력이 3분의 1이 된다고 했다. 집안 내력이 그렇든지 어쨌든 먼저 고개를 내민 사람이다. (강정구는) 북한과 연계가 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 종북좌파 중 상당수가 자신을 진보라고 자칭한다. 우리나라에 진정한 진보세력이 있다고 보나.
“진보라는 말은 정말 잘못된 용어다. 공산주의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보된 사회가 공산주의 사회라는 뜻이다. 진보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유물사관을 인정하는 것이다. 절대로 진보라고 부르면 안된다.”

- 일부 언론은 종북좌파를 진보라고 부르고 있다.
“종북좌파나 친북세력이라고 불러야 한다. 저쪽에 말려드는 게 용어혼란전술 아닌가. (저들이) 원정시위대를 희망버스라고 부른다고 제대로 된 언론들이 희망버스를 그대로 쓰면 되나? 그들을 진보라고 보면 보수우파인 우리는 퇴보인가?”

- 우리 사회에 서구와 같은 진정한 좌파가 있다고 보나.
“서구에서의 좌파·우파 개념과 우리나라의 좌우 개념은 다르다. 2008년 민주당의 오바마가 당선되었을 때 우리나라에서 민주당이 만세를 불렀다. 민주당은 오바마가 좌파이니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으로 보았다. 같은 좌파라고. 그런데 오바마는 민주당의 기대에 어긋났다. 우리나라에서 좌파와 우파는 정책적 개념이 아니다. 우파는 친(親)대한민국이고 좌파는 반(反)대한민국이다. 우파가 보금자리주택, 미소금융 등에 반대한 적이 있나?”

- 종북좌파를 구분해 내는 기준은 무엇이 있나.
“북한은 우리나라를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미군철수를 주장한다. 같은 미군철수 주장을 해도 이런 시각은 주권국가에 왜 외국 군대가 주둔하느냐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민중(인민)혁명을 일으켜 정부를 전복해 민중정부를 세우려 한다. 그러고 나서 연방제 통일을 하자는 것이다. 이런 민중혁명에 장애가 되는 게 국가보안법이다. 그래서 그들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다. 요즘은 연방제라는 말 대신 6·15 선언 실천이라는 트릭을 쓰지만 기본적으로 그 틀이다.”

- ‘천안함 폭침 사건’을 북한 소행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도 종북세력이거나 종북세력에 동조하는 것 아닌가.
“기본 줄기는 아니어도 북한 입장에 서서 말하는 것이니 그렇게 볼 수 있는 한 가지 증표다. 예컨대 KAL기 폭파사건이 북한이 저지른 범행이라는 것은 전 세계 사람이 다 안다. 하지만 KAL기 폭파사건이 한국 정부가 조작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북한과 남한 내 좌익밖에 없다. 그들은 아무리 과학적인 설명을 해도, 명백한 증거를 보여줘도 믿지 않는다.”

-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공개적으로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나.
“글쎄, 참. 김정일 한번 만나면 사람들이 돌아서 온다고 하더라. 종북세력에 북한은 민주기지다. 북한과의 접촉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하물며 김정일을 만나고 오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해서 무조건 그쪽 편을 들어준다. 북한이 갖은 방법을 써서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

- KBS가 8·15에 맞춰 ‘특집 이승만’을 만들어 놓고도 결국 방영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방송은 마음대로 나가고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방송은 못 나간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종북좌익세력이 곳곳에 확장됐다는 얘기다. 사실 어떻게 보면 대세는 그쪽으로 기울었다고 본다.”

- 무슨 뜻인가.
“좌파가 사회 곳곳을 장악했다. 언론도, 학계도….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바로잡느냐 하는 것만 남았다.”

- 고 위원장은 20년 전 이미 ‘전교조의 목적은 초·중·고생들의 좌경의식화를 통해 민중민주혁명 역량을 키우는 데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어떻게 그때 전교조의 정체를 정확히 꿰뚫어볼 수 있었나.
“1987~1988년 민중교육지 사건 공판을 맡았던 적이 있다. 민중교육지가 전교조가 나오게 된 이론적 근거다. 그때 압수된 노트, 메모 등을 다 읽어보았다. 나는 그들의 속내를 알게 되었다. 겉으로 하는 말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내건 ‘참교육’은 일본교원노조에서 만들어낸 眞교육을 우리말로 바꾼 것이다. 일본 교원노조는 일본 사회당 계열이다. 일본 공산당보다 더 극좌다. 학생들 대부분은 민중의 자식이고, 대부분 민중이 될 학생들에게 자본가를 위한 자본가 교육을 시키는 것은 가짜 교육이라는 논리다. 민중이 주인이 되는 나라가 건설할 수 있는 민중혁명 역량을 키워주는 게 참교육이라는 선전이다.”

- 전교조는 어떤 전략과 배경에서 만들어진 건가.
“1987년에 대학가 전체가 빨갛게 의식화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전부 의식화시켰는데 왜 민중혁명이 일어나지 않느냐고 불만이 많았다. 4·19 때를 봐라. 초·중·고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나. 학생들을 의식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전교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설명했더니 1989년 당시 다른 공안검사들의 반응은 ‘고 검사가 과격해서 그렇다. 설마 교사들이 그렇게 하겠느냐?’는 반응이었다. 내가 과격한 사람 취급을 받아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 왕재산 간첩단사건의 2인자가 임채정 국회의장의 정무비서관을 지냈다. 임채정 국회의장도 정무비서관의 정체를 몰랐다는 뜻인가.
“그건 아무도 모른다. 예전에 황장엽씨가 내려온 직후에 한 얘기가 있지 않으냐? 청와대서 대통령이 한 얘기가 그 다음날 김일성 보고서에 올라와 있다는 얘기를 했지 않나. 국회의장 비서관 정도는 일도 아니다. 아마 정보기관에도 상당수 포진해 있을 것이다.”

-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에 대해 영장기각, 무죄,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건 내가 피부로 가장 절감한다. 2003년에 사법시험 3차시험위원을 했다. 3명이 한 조가 되어 10명씩을 면접하기로 되어 있었다. 1000명 중 1~2명을 떨어뜨리는 게 3차시험 면접이었다. 내가 이화여대 졸업생에게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학생이 ‘외형상으로 대한민국이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건국세력이 친일파였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정통성이 있는지는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때 깜짝 놀랐다. 떨어지려고 하는 줄 알았다. 다음 질문은 주한미군철수 주장에 대해 물었다. 이 학생은 ‘당연히 철수해야 한다’고 답했다. 너무 쉽게 얘기해서 내가 ‘그러면 북한이 남침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해봤느냐’고 물었더니 ‘왜 북한이 한국을 침략하느냐, 남북이 사이좋게 지내면 되지’라고 대답했다. 처음엔 하도 충격받아 이 여학생을 탈락시켜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지원자를 면접해 보니 10명 중 8명이 그렇더라. 기본적으로 전교조 교육을 받아 그게 정답인 줄 안다. 그 충격에 그날 밤 위통이 와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

- 연수원을 거치면 잘못된 생각이 교정되지 않나.
“검사 임용시험의 시험관을 했다. 그들도 역시 똑같은 답변을 했다. 검사가 되겠다는 애들이…. 2년 동안 연수원을 거치면서 잘못된 생각이 고쳐졌을 줄 알았다. 연수원 생활도 공무원과 비슷한데…. 검사들 들어오면 전부 재교육 시키라고 했는데 좌파정권하에서 실행이 되지 않았다. 검사는 층층시하에 있기 때문에 교정될 시간이 있다. 법원은 정말 교정이 불가능하다. 판사를 가르칠 사람이 없다. 판사는 혼자 하는 것이라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 잘못하면 법원에 가서 심판을 받는데, 저기서 기준이 바뀌면 선악 구분이 없어진다.”

- 판사들이 그런 것은 이용훈 대법원장의 코드에 맞추기 위한 것인가.
“기본적으로 전교조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교육을 받은 결과다.”

- 이용훈 대법원장 코드에 맞추지 않으면 판사 승진에 제약을 받았다고 하던데.
“모든 판사들의 꿈이 대법관이 되는 것이다. 반국가적인 판결을 내리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줘야 하는데…. 지난 좌파정권하에서는 좌익사범에 무죄를 내리거나 좌익사범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지 않으면 대법관 후보에 오르지도 못한다. 이용훈 대법원 체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우파정권이 들어섰는데도 이용훈 대법원장이 법원을 쥐고 있으니.”

- 민주당이 종북좌파와 결별하지 못하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그만큼 종북좌파가 많아졌다는 얘기다. 민주당뿐인가. 한나라당에서 좌클릭해야 한다고 하지 않나? 좌익세력들은 지난 30년 동안 목숨 걸고 이념교육을 시켜왔다. 이것을 원상회복 하려면 우파도 앞으로 30년 동안 이념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런데 정부나 한나라당이 이 문제에 대한 고민도 생각도 없다. 한나라당은 어떻게 하면 20대 투표율을 낮추나 그런 연구만 한다. 정말 한심하다.”

- 핵심 종북좌익세력의 수가 얼마라고 보나.
“황장엽씨는 북한과 직접 연계되는 사람이 5만명이라고 했다. 그 뒤로 더 늘었을 것이다. 천안함 폭침을 북한 소행이라고 끝까지 믿지 않는 사람이 전 국민의 20%라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20%는 된다고 본다.”

- 어떤 전문가는 종북좌파의 척결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미 척결할 숫자를 넘었다. 국사학자의 90% 이상이 수정주의학자다. 논술고사는 거의 모두 좌파교사들이 장악했다. 학교에서는 전교조가 판을 치고 있다. 비(非)
전교조 교사가 수는 많지만 이들은 많은 경우 생각도 없고 능력도 부족하다. 대한민국 역사를 제대로 쓴, 제대로 된 교과서로 공부해서는 빵점을 받는다.”

- 정말 대한민국 정체성을 바로잡을 길은 없는가.
“대기업에서 사람 뽑을 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신념과 철학을 물어보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기업은 좌파에 찍힐까봐 그걸 공식적으로 못한다. 마지막 남은 보루는 공무원 시험인데, 국사시험에 문제를 제대로 내면 되니까. 최근 5년간 국사시험을 분석해 보니까 이게 전부 북한 역사교과서를 가지고 문제를 내는 것 같다. 공무원 시험에 전교조 선언문이 예문으로 출제된다. 좌익항일운동한 사람만 나온다. 북한 역사를 공부해야 쓸 수 있는 문제들만 나온다.”

- 한상대 검찰총장이 ‘종북좌익 척결’을 3대 과제 중 하나로 들고나왔다. 어떻게 생각하나.
“진짜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검찰총장 혼자 생각인지 MB의 뜻이 반영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지금 우파는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사실 MB에 대한 기대는 접었지만 한상대 검찰총장의 그 선언은 잘한 일이다. 종북좌익을 척결하겠다고 하는데 왜 민주당과 민노당이 시비를 삼나?(웃음)”

- 타이밍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2008년 정권 출범과 함께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당연하다. MB 정권은 정권 교체의 역사적 의미를 모르고 그동안 중도실용이나 이야기하지 않았나. 중도실용은 다른 말로 기회주의 아니냐. 대한민국 정통성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지를 모른 채 시간을 보냈다.”

※ 고영주는 

고영주 위원장은 1949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검사가 되었고 서울남부지검장까지 지냈다.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을 당시만 해도 그의 꿈은 졸업 후 미국 유학을 다녀와 모교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1969년 6월, 대학 3학년 때 부친이 작고했다. 장남인 그는 부친이 운영하는 소석회광산과 자동차정비공장을 맡아야 했다. 그 결과 대학 4학년 학점이 엉망이었다. 미국 유학을 가려면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데 성적이 나빠 유학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유학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했다. 광주 포병학교 교장실에 근무하면서 샤를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읽기 시작했다. 아버지 사업을 맡아 하면서 가장 답답했던 게 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법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주변에 조언해줄 사람이 없었다. 혼자 찾아낸 책이 ‘법의 정신’이었다. 이것이 그를 법조계로 이끌었다.

3년간 군복무를 마친 그는 사법시험 공부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2년 만인 1976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1978년 청주지검 검사로 발령받았다. 1980년 부산지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 1981년 부림사건을 수사했다. 2006년 1월 서울남부지검장을 끝으로 검사직에서 물러났다. 검사 생활 28년 동안 공안검사를 20년 했다. 현재 법무법인 케이씨엘 대표 변호사로 있다.


[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42> 크루즈 여행의 모든 것

[중앙일보] 입력 2011.08.26 00:01 수정 2011.08.26 00:01 | 경제 14면 지면보기

초대형 크루즈선 얼루어호, 배 안에서 인공 파도타기도 한답니다

‘호화로운 선상과 지중해의 환상적인 석양. 타이타닉보다 큰 초대형 선박. 고품격 서비스와 고가의 승선 비용.’ 크루즈(cruise) 여행 하면 떠오르는 말들입니다. 흔히들 크루즈 여행은 유럽이나 지중해 등에서만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크루즈 여행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런 인식에도 변화가 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여행 코스와 일정으로 국내 관광객들에게도 친숙하게 다가오고 있는 크루즈에 대해 알아봅니다.

최경호 기자

크루즈 여행이란

세계 최대 크루즈선인 로열 캐리비언 크루즈사의 ‘얼루어(Allure of the Seas)’호가 항해를 하는 모습. 이 배는 축구장 3개 반을 이어 붙인 규모로 타이타닉호보다 5배가량 크다. [로열 캐리비언 크루즈 제공]

장거리 항해를 하면서 숙박과 오락·여가 등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여행이다. 대형 크루즈에서 다양한 선상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배에서 오락과 여가를 즐기고 잠을 자다 보면 세계적인 관광 명소나 쇼핑지에 도착하게 된다. 안락한 이동과 안전한 숙박, 즐거운 선상 여가를 만끽할 수 있어 다양한 연령층에게 만족감을 준다. 세계적으로 매년 1200만~1300만 명이 지중해·북유럽·북극·멕시코·남미·아시아 등을 여행하고 있다.

시초는

크루즈선은 대서양을 운항하는 선박들이 모태가 됐다. 유럽과 미국을 오가는 배 위에서 부유층이 유람을 즐긴 것이 크루즈 여행의 시작이다. 1819년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항에서 영국의 리버풀항까지 항해한 ‘서배너(Savannah)’호가 최초의 크루즈선이다. 초기에는 크루즈선의 선체가 작고 안전 설비도 빈약해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레저 개념의 크루즈는 19세기 중반에 시작됐다. 20세기 들어선 배에서 숙박과 식사·휴양·엔터테인먼트 등이 가능한 대형 크루즈선이 등장했다. 크루즈선이 ‘떠다니는 리조트’라는 닉네임을 갖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우리나라는 1999년 크루즈 상품이 처음 출시된 이후 매년 여행 수요가 늘고 있다. 국내 크루즈 관광객은 초기엔 200~300명에 불과했으나 최근에는 연간 3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호텔 겸 교통수단

크루즈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이동에 따른 시간과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크루즈선에 타는 순간 여행과 휴식·여가·이동 등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이뤄진다. 크루즈의 선실은 호텔이면서 교통수단이다. 여행지를 이동할 때마다 짐을 싸고 풀어야 하는 불편함도 없다. 또 기항지에서의 관광 방식을 자신이 직접 고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여행객은 새로운 여행지에 도착할 때마다 자유 여행과 안내원을 동반한 여행 등을 선택할 수 있다. 여행이 힘들거나 지쳤다면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크루즈 여행은 사고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배를 타고 이동한다는 점에서 여행의 안전성도 높다. 크루즈 여행이 허니문은 물론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관광객까지 세대에 구애받지 않는 여행으로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반 여행상품보다 싸게 먹혀

해외 여행을 하려면 항공료·숙박료·교통비·식비 등이 든다. 하지만 크루즈 여행은 배를 타는 곳까지의 항공료와 크루즈 승선 비용 만으로 모든 게 해결된다. 배 위에서 즐길 수 있는 각종 쇼와 파티, 오락 프로그램 등도 추가 요금 없이 즐길 수 있다. 하루 세 번의 식사와 간식·야식 등이 무료로 제공된다. 최근 인기가 높은 아시아(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푸껫) 크루즈 여행의 비용은 항공료와 승선료를 포함해 총 137만원 선이다. 같은 코스를 개별적으로 여행할 경우 230만원 이상이 소요된다. 일반 여행 상품은 항공료가 120만원에 달하지만 크루즈 승객은 55만원만 부담하면 된다. 크루즈 운항 국가 간의 두 차례 항공료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숙박비는 82만원으로 일반 여행사의 숙박비(63만원)에 비해 높다. 하지만 크루즈선에선 식비(45만원)와 공연감상 비용(12만원) 등이 무료다.

기항지 자유로운 관광 매력

크루즈는 기항지마다 자유롭게 승하선을 할 수 있고 승선 요청 시간까지만 탑승하면 된다. 승선 시간까지 배를 타지 못할 경우 다음 기항지까지 개별적으로 이동해야 한다. 기항지 여행은 ▶선사에서 운영하는 기항지 선택 관광 ▶자유 관광 ▶현지 관광사를 통한 관광 ▶휴식(크루즈 프로그램 참가) 등 네 가지로 구분된다. 선택 관광은 출발 10일 전까지 인터넷을 통해 예약할 수 있다. 탑승 후에는 최소 1~2일 전까지 선박 내의 데스크에서 예약을 하면 된다. 크루즈 여행은 서두를수록 혜택이 많다. 객실도 선착순으로 배정되며, 조기 예약은 객실 요금을 최대 30% 할인받을 수 있다. 여기에 크루즈 상품을 파는 여행사는 대부분 한 달 전에 예약을 마감한다. 따라서 최소 여행 한 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 유럽에선 1년 전 예약도 흔하다. 여행 국가에 따른 비자와 6개월 이상 유효기간이 남아있는 여권 등도 챙겨야 한다.

위부터 얼루어호의 어린이 전용 수영장인 ‘H2O존’, 알래스카를 운항 중인 레전드호, 22만t 규모의 오아시스호 선상 수영장.

다양한 종류의 객실

크루즈 객실은 ‘캐빈(Cabin)’이라고 한다. 크게 ▶내측(Inside) ▶오션뷰(Outside) ▶발코니(Balcony) ▶스위트(Suite) 등 네 가지로 구분된다. 내측 선실은 창문이 없고 사방이 벽이라 요금이 가장 저렴하다. 크루즈의 부대시설과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즐기는 활동적인 성향의 관광객들에게 유리하다. 오션뷰는 바다가 보이는 창문이 있으나 열리지는 않는다. 내측 선실보다는 요금이 조금 비싸지만 창문으로 바다와 새로운 여행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발코니 선실은 발코니를 통해 바다를 항해하는 크루즈의 매력을 맘껏 느낄 수 있다. 내측이나 오션뷰 캐빈보다 객실 면적이 넓고 요금도 비싸다. 스위트는 일반 발코니 선실보다 면적이 넓고 크루즈 등급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선실을 이용할 수 있다. 개인비서 개념의 버틀러(bulter)와 우선 승하선 등 품격 있는 서비스가 제공된다. 동일한 종류의 캐빈이라도 면적·층수·위치 등에 따라 요금이 달라진다.

리버·연안·오션 크루즈 3종류

크루즈선은 배의 크기에 따라 네 종류로 구분된다. 소형 크루즈(small ship)는 2만5000t 이하의 선박으로 200~500명이 탑승할 수 있다. 중형 크루즈(mid-size ship)는 3만5000~7만t 규모로 500~1700명을 태운다. 일반적인 크루즈 여행에 이용되는 선박은 대형 크루즈(large ship)다. 규모는 7만~10만t으로 15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다. 초대형 크루즈(very large cruise vessel)는 10만t 이상으로 2500명 이상을 태우도록 설계된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크루즈선은 로열 캐리비언크루즈사가 보유한 ‘얼루어(Allure of the Seas)’호다. 22만5000t급인 이 배는 길이 361m, 폭 47m로 타이타닉호보다 다섯 배가량 크다. 축구장 3개 반을 이어 붙인 규모로 선실 2700개에 승객 8500여 명을 태울 수 있다. 국내 기업인 STX가 인수한STX유럽이 얼루어호와 자매선인 ‘오아시스(Oasis of the Seas·22만t)’호를 건조했다. 두 초대형 크루즈선에는 선박 내에 센트럴파크, 인공 파도타기, 아쿠아 시어터, 아이스링크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등급별로는 대중적 크루즈(★★★★), 프리미엄 크루즈(★★★★★), 딜럭스·럭셔리 크루즈 (★★★★★★) 등 3등급으로 나뉜다. 등급은 단순히 배의 크기만이 아니고 크루즈선의 디자인과 시설, 운항 일정, 승무원 서비스, 선실, 음식, 선상 프로그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 운항 지역별로는 리버 크루즈(River Cruise), 연안 크루즈(Coast Cruise), 오션 크루즈(Ocean Cruise)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카리브해 코스, 전 세계 수요의 절반

크루즈 여행은 운항 지역을 선택하는 일이 중요하다. 매력적인 선상 생활뿐만 아니라 기항지에서의 여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크루즈 운항지는 카리브해·지중해·북유럽·알래스카·아시아 등이다. 최근엔 갈라파고스·남극·흑해·카나리제도 등 운항 지역이 다양화되는 추세다. 카리브해 코스는 흥겨운 레게 음악과 다양한 해양 스포츠, 면세 쇼핑의 천국으로 통한다. 전 세계 크루즈 수요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지중해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유적과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섬들을 둘러볼 수 있다.

북유럽·알래스카 코스도 색다른 맛

북유럽 코스는 영국이나 네덜란드에서 출발해 북유럽의 여러 국가를 거쳐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운항한다. ‘이동의 편의성’이라는 크루즈의 매력을 실감할 수 있는 일정이다. 알래스카 일정은 바다가 잔잔하고 기온이 따뜻한 5월부터 9월 초까지 이어진다. 빙하 헬기투어, 개 썰매, 고래 관찰 등 원시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체험할 수 있다. 크고 작은 호수에서 떼 지어 올라오는 연어를 지켜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아시아 일정은 유럽이나 미주 지역에 비해 비용이나 거리 면에서 유리하다. 1년 내내 다채로운 축제가 열리는 싱가포르, 태국의 진주라 불리는 푸껫, 독특한 문화를 간직한 말레이시아 등을 4~6일간 운항한다.

[출처: 중앙일보] [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42> 크루즈 여행의 모든 것